SINGLES

메뉴
Search
마이페이지

Fashion2018.04.10

경계를 허물다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의미 없어진 21세기 패션, 젠더 뉴트럴에 대해.

때는 3년 전, 에디 슬리먼의 생 로랑 시절. 2015 F/W 남성복 런웨이에 오른 8cm짜리 굽이 달린 남성용 앵클 부츠는 쇼에 초대 받은 지드래곤만큼이나 관심의 대상이었다. 마른 몸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던 이 마법의 신발은 매장에 들이기도 전에 주문이 밀려들었다. 루이비통 2016 S/S 여성복 캠페인에는 제이든 스미스가 스커트 차림으로 등장했다.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그를 두고 고정관념이나 성별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유로운 세대를 대변하는 인물이라 설명했다. 성별은 더 이상 옷으로 가늠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어여쁜 분홍색으로 물들인 옷은 남자옷장에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 빼빼 마른 아이돌 스타들이 여성 아이템을 제법 잘 소화하는 것도 공공연하고, 카니예 웨스트 역시 지방시 가죽 치마를 입고 공연을 하거나 셀린의 실크 파자마 셔츠를 입으니까. 남자와 여자의 옷을 구분 짓는 것은 현대적이지 못한 태도다. 성별과 상관없이 취향과 기분에 따라 옷을 입는 지금의 현상을 두고 패션 전문가들은 ‘젠더 뉴트럴(Gender Neutrality)’ 즉 ‘성의 중립’을 선언했다. 비슷한 것 같지만 유니섹스나 젠더리스와는 뉘앙스가 다르다. ‘셰어드 워드로브(Shared Wardrobe)’라는 테마 아래 완성된 2015 S/S 시즌 로에베 남성 컬렉션을 참고하면 이해가 쉬울 테다. 남녀 모두를 위해 만들어진 기존의 유니섹스 패션이 아니라 남자 옷은 남자를 위해, 여자 옷은 여자를 위해 디자인한다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옷은 그저 옷일 뿐, 마음에 든다면 누구나 입을 수 있다는 것. 옷을 통해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유연성이 젠더 뉴트럴의 핵심이다.

null
1 조나단 윌리엄 앤더슨의 첫 번째 로에베 남성 컬렉션 ‘셰어드 워드로브’.
2 여자들이 입고 싶을 만큼 어여쁜 2016 S/S시즌 구찌의 남자 옷들.
3 11세 소년이 모델로 등장한 2015 F/W 아크네 스튜디오 여성복 캠페인.
남성복과 여성복의 경계가 좀더 구체적으로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은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구찌를 맡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덥수룩한 수염과 대조되는 긴 곱슬머리로 본인의 크로스젠더적 성향을 드러내 보이는 이 디자이너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연계시킨다. 2015 F/W 시즌 그의 데뷔쇼에 등장한 곱상한 남자들은 커다란 리본이 달린 실크 블라우스나 섬세한 레이스로 짜인 시스루 톱으로 멋을 냈다. 더러는 마치 여동생의 옷을 훔쳐 입은 듯 소매가 짧고 어깨가 지나치게 꽉 끼는 재킷을 입기도 했다. 2016 F/W 남성 컬렉션에는 트랜스젠더 모델이자 미켈레의 뮤즈 하리 네프가 런웨이에 오르며 성에 대한 제약 없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멋진지 증명하기도 했다. 데이비드 보위나 보이 조지를 떠올린다면 콘셉트 자체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지만, 유서 깊은 이탈리안 하이패션 하우스에서 대대적인 변화를 꾀했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동시대적 패션을제대로 진단하고 나아갈 방향을 정확히 제시한 것.물론 이런 시도는 미켈레 이전부터 꾸준히 있어왔다. 리카르도 티시가 남자들을 스커트에 익숙하도록 만들었다면, 남자들도 예쁜 옷이 어울린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 인물은 조나단 윌리엄 앤더슨이다. 밑단에 러플을 단 남성용 쇼츠를 선보인 2013 F/W 시즌 J. W. 앤더슨의 남성 컬렉션이 전한 그 신선한 충격이란. 허벅지까지 오는 짧은 미니 드레스나 어깨를 고스란히 드러낸 튜브 톱을 입은 채 런웨이를 유유히 걸어 나오는 남자 모델들은 꽤 아름다웠다. 이처럼 남녀를 가르던 기준이 모호해지자 디자이너들은 더 새로운 형태와 실루엣을 탐구하게 되었다. 에디 슬리먼이 재창조할 셀린의 남녀 컬렉션(에디는 셀린의 남성 컬렉션 론칭을 예고했다)이 대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는 수만 가지 이유 중 하나 역시 그가 선보일 젠더 플레이에 대한 기대다. 과거 그가 만든 디올 옴므 수트를 입기 위해 남자는 물론 여자들까지 혹독한 다이어트를 감행하지 않았나.

null
4 3년 전, 생 로랑에서 선보인 남성용 하이힐 부츠.
5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구찌 데뷔 쇼에 등장한 꽃무늬 수트.
6 J.W.앤더슨 2013 F/W 남성 컬렉션에서는 남자 모델들이 러플이 달린 쇼츠를 입고 런웨이에 올랐다.
젠더 뉴트럴은 단순히 옷차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적인 측면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례로, 남성복과 여성복의 런웨이가 하나로 통합되고 있는 추세. “남녀 컬렉션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그렇다”고 말하며 지난해 2월부터 남녀 통합 컬렉션을 선보인 미켈레는 ‘다양성과 통합’이란 주제로 무려 100벌이 넘는 룩으로 구성된 대형 패션쇼를 완성했다. 같은 시즌, 뉴욕으로 건너간 라프 시몬스 역시 캘빈 클라인 하우스 사상 처음으로 남성복과 여성복을 같은 무대에 올렸다. 올해 3월 초 에 막을 내린 2018 F/W 패션위크를 기점으로 살바토레 페라가모, 몽클레르, 발렌시아가도 남녀 통합 대열에 합류했다. 쇼핑 방식에도 변화가 찾아올 예정이다. 2015년 런던 셀프리지 백화점에서 기획한 팝업 스토어 ‘어젠더(Agender)’가 좋은 선례가 되어 줄 것이다. 그(He)나 그녀(She)가 아닌 나 자신(Me)이 되자는 메시지를 던지며 남녀 구분을 없앤 흥미로운 디스플레이로 시선을 모았다. 혁신적인 시도로 보이지만 머지않아 무척 자연스러워질 미래의 쇼핑 형태가 아닐까.
null
8 버버리 쇼에는 동일한 스타일의 옷을 입은 남녀 모델이 함께 등장한 지 오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독특한 현상처럼 보이지만, 밀레니얼 세대에게 서로의 영역을 자유롭게 오가는 일은 무척 익숙한 듯 보인다. 뉴욕의 바하 이스트(Baja East)나 바퀘라(Vaquera), 런던의 아트 스쿨(Art School)과 같이 성별에서 벗어난, 다소 난해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신진 브랜드들이 젊은 힙스터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는 걸 보면 말이다. 조니 요한슨은 2015 F/W 아크네 스튜디오 여성복 캠페인에 당시 11살이었던 아들 프라세를 모델로 세웠다. 아이들이 그 어떤 선입견 없이 패션을 처음 경험하는 순간을 묘사하고 싶었다고.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핑크색 코트와 하이힐 부츠를 신은 프라세 본인 역시 자기가 입은 옷이 여자 옷이든 남자 옷이든 상관이 없을 뿐더러 그 차이를 모르겠다고 밝혔다. 젠더 이슈를 다룬 작업은 아니었지만, 요한슨 부자의 옷을 대하는 태도야말로 21세기에 가장 걸맞은 자세가 아닐까. 옷의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옷을 받아들이는 것. 입고 싶은 옷을 자유롭게 입는 것. 알고 보면 무척 단순하고 평범한 이야기다.

#싱글즈 #패션 #버버리 #생로랑 #구찌 #아크네스튜디오 #알레산드로미켈레 #jw앤더슨 #준지 #젠더리스 #셰어드워드로브
<싱글즈>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재배포 등을 금합니다.
좋아요
목록보기


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URL복사

해당 페이지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해당 페이지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가 필요합니다.
나의 포인트 :

주소찾기

닫기
주소검색

동, 읍, 면, 기관, 학교 등의 이름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