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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2019.04.13

아젠다 쇼

일상으로 깊숙이 들어온 패션은 단순히 옷이나 유행을 넘어 지금 사회에 필요한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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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파리 오트쿠튀르 쇼가 한창이던 지난 1월, 인스타그램에는 재미있는 문구가 적힌 드레스 사진들이 연이어 올라왔다. ‘늦어서 미안해, 오고 싶지 않았거든(Sorry I’m late, I didn’t want to come)’ ‘수줍은 게 아냐, 단지 네가 싫을 뿐이야(I’m not shy, I just don’t like you)’처럼 왠지 속이 시원해지는 문구가 커다랗게 박힌 드레스는 빅터앤롤프 쇼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정작 디자이너 듀오는 소셜 미디어나 기념품 티셔츠에 주로 쓰이는 슬로건을 사용한 것일 뿐 큰 의미가 없다고 했지만, ‘자유(Freedom)’와 ‘평화(Peace)’ 그리고 웃고 있는 태양 그림과 나란히 등장한 ‘나는 더 나은 세상을 원한다(I want a better world)’는 텍스트들이 과연 현실 세계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볼 수 있을까. 특히 ‘사진 찍지 마세요(No photos please)’라고 적힌 오프닝 드레스는 옷은 보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기에 급급한 요즘 관객들에게 던지는 무언의 경고 같았다. 사실 그보다 더 놀라운 건 폭발적인 예술성과 숭고한 장인정신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던 오트쿠튀르에서 인스턴트로 가득한 SNS 세계를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발달은 패션을 완전히 동시대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매출과 직결되는 레디투웨어 시장은 실시간으로 내려지는 평가에 훨씬 민감할 수 밖에 없었고, 허황된 판타지를 표현하기보다는 실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택했다. 허를 찌르는 상상력과 감탄을 자아내는 예술성은 현저히 줄었지만, 대신 현실에 존재하는 사회문제들에 대해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다. 영국패션협회는 2019 S/S 시즌부터 모피 퇴출을 선언했고(4대 패션위크 중 최초다), 현재 가장 주목 받는 신인 마린 세르는 컬렉션 의상의 반을 재활용 소재로 만들었다. 액트 넘버원의 갈립 가사노프와 루키 린은 ‘어린 신부’라는 사회적 이슈를 무대 위에서 다루며 조지아에서 벌어지는 아동 결혼의 실태를 알리기도 했다. 이처럼 환경이나 여성 인권을 위한 목소리도 컸지만, 이번 시즌을 정리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따로 있다. 바로 다양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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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 년간 ‘어리고 날씬하고 예쁜 외모를 지닌 백인’ 모델이 패션계에 통용되는 이상적인 미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시즌 전부터 남녀 컬렉션의 경계가 무너지고 다양한 인종과 성별, 나이를 지닌 모델이 런웨이를 걷는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 애슐리 그레이엄은 [포브스]가 선정한 ‘2017년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모델(약 59억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 같은 흐름은 2019 S/S 뉴욕패션위크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프라발 구룽 쇼에는 35개국에서 온 모델이 등장했고, 브랜든 맥스웰에는 임신 중인 모델 릴리 앨드리지가 몸에 딱 붙는 드레스 차림으로 런웨이에 올랐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와 문화에서 영감을 얻은 컬렉션을 위해 뉴욕의 첫 흑인 자유 공동체였던 위크스빌 헤리티지 센터에서 쇼를 개최한 파이어 모스는 흑인 모델만을 무대에 세웠다. 암 투병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마마 칵스, 백색증을 가진 디안드라 포레스트, 트랜스젠더 레이나 블룸 등 다채로운 모델 라인업을 선보인 크로맷의 피날레 무대에는 서로 다른 체형을 지닌 모델들이 ‘샘플 사이즈(보통 늘씬한 모델 사이즈를 일컫는다)’라 적힌티셔츠를나누어입었다.
사실 뉴욕의 관심은 온통 리한나의 란제리 브랜드 새비지×펜티 론칭소식에 쏠려 있었다. 빅토리아 시크릿 같은 판타지를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펜티 뷰티를 론칭했을 때도 무려 40가지 셰이드의 파운데이션을 출시했던 그녀가 아닌가. 브래지어 사이즈는 32AA부터 44DDD까지, 브리프는 XS부터 3XL까지. 리한나는 여성의 거의 모든 신체 유형을 고려한 현실적인 결과물을 내놓았다. 프레젠테이션 방식으로 진행된 쇼 역시 심상치 않았다. 임신 7개월의 몸으로 런웨이에 오른 까까머리 모델 슬릭 우즈, 플러스 사이즈 모델 팔로마 엘세서를 필두로 한 다양한 체형과 피부색을 지닌 여성들이 속옷 차림으로 무대를 거닐고 춤을 췄으니까. 리한나만큼이나 흥미로운 쇼를 선보인 디자이너가 또 있다. 캐롤 림과 움베르토 레온이다.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시즌 9의 우승자 사샤 벨루어가 주최하는 드래그 쇼 형식으로 오프닝 세레모니 무대를 준비한 것. 드래그 퀸 21명을 포함해 두 시간동안 등장한 모델 모두가 LGBTQIA+였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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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은 패션위크 역사상 가장 다양성이 확보된 때로 기록된다. 모델 랭킹 10위의 반이 비백인 모델이고, 런웨이에 오른 플러스 사이즈 모델 수는 전 시즌에 비해 두 배나 늘었으며, 시니어 모델의 활동도 증가했다. 그러나 수치를 놓고 보면 그렇게 만족할 만한 결과는 아니다. 지금껏 해온 이야기들 역시 뉴욕에 한정된 내용이 아닌가. 패션계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곳이다. 하지만 획일적 아름다움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지녔기에, 패션이 매번 새롭고 다채로워질 수 있는 거다. 무지갯빛으로 물들었던 마지막 버버리 쇼를 끝낸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했던 말이 필요한 순간이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창의력의 기본이다.”
사진제공 www.imaxtr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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