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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2019.05.11

컬렉션 격동기

염원과 판타지가 뒤섞인 런웨이 없는 하이패션이 존립할 수 있을까? 새로운 소비 세대의 등장과 소비 방식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전통적 패션 사이클이 허물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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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S/S 시즌에 처음으로 남녀 통합 컬렉션을 선보인 르메르. 패션계는 기계적인 사이클과 과도한 비용을 동반하는 쇼 이벤트를 하나로 압축하는 추세다.
일 년에 두 번, 패션 도시라 일컬어지는 뉴욕과 런던, 밀라노, 파리는 그 어느 때 보다 소란하다. 하이패션 브랜드의 정기 컬렉션을 공개하는 패션위크가 뉴욕을 시작으로 런던, 밀라노, 파리로 무대를 옮겨가며 한 달간의 긴 여정이 이어진다. 각국의 패션 에디터와 블로거, 셀러브리티, 바이어, 포토그래퍼 등이 한 도시로 몰려들며 호텔과 레스토랑은 예약 대란을, 거리는 늘 지독한 트래픽을 경험케 한다. 쇼장 앞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며 빈 자리가 나기를 염원하는 사람들과 인비테이션을 손에 쥐고 고고하게 걷는 ‘선택’ 받은 자들, 순간 포착에 혈안인 스트리트 포토그래퍼가 한데 뒤엉키며 소란한 풍경을 양산한다. 그러나 지난 2월의 뉴욕은 이상기후라 여겨질 만큼 포근했던 날씨와 달리 지독히도 삭막했다. 한동안 위기에 봉착했던 뉴욕패션위크에 신선함과 묵직한 중량감을 수혈하며 이를 정상 궤도에 안착시킨 히어로, 캘빈 클라인 205W39NYC의 부재가 그 이유였다. 충격이었지만 어느 정도 예견된 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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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쇼로 남은 2019 S/S 캘빈 클라인 피날레에서 포착된 라프 시몬스.
지난해 12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라프 시몬스가 계약 기간을 8개월이나 남겨둔 상황에서 홀연히 하우스를 떠난 것이다. 결별의 징조는 이전부터 감지됐다. 캘빈 클라인 205W39NYC의 모회사인 PVH의 CEO 엠마뉴엘 치리코가 라프 시몬스의 실적을 적나라하게 공개하며 그의 자존심을 처참히 짓밟은 사건이 벌어진 것. 실제로 지난 2016년 라프 시몬스가 캘빈 클라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꿰찬 이후 하우스는 대대적인 변화를 감행하며 무려 700~800억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예산을 쏟아부었다. 라프는 센슈얼과 미니멀리즘으로 대표되는 하우스 이미지를 완전히 뒤엎어버렸다. 하이엔드부터 언더웨어에 이르는 수많은 라인은 물론 광고 캠페인, 플래그십 스토어, 비주얼 머천다이징, 심지어는 구성원들까지도 모조리 재창조했다. 천재 디자이너에 의해 재탄생된 하우스는 ‘CFDA(미국 패션디자인협회) 어워드’ 올해의 디자이너상을 2년 연속 수상하는 전례 없는 역사를 만들며 순항하는 듯 보였다. (2017년도엔 올해의 남녀 디자이너상을 모두 수상했다.) 그러나 잔인하게도 예술적 찬사와 실적은 정확히 반비례했다. 막대한 마케팅 비용과 업계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캘빈 클라인 205W39NYC는 전년 대비 무려 2100만 달러, 한화 약 240억원의 손실을 내는 어이없는 결과를 손에 쥐었다. 전설적인 디자이너는 수익성과 시장이라는 단어 앞에 처참히 무너졌다. PVH의 CEO 엠마뉴엘 치리코는 지나치게 고급화된 전략을 실패 원인으로 꼽았다. 캘빈 클라인의 기존 마니아층은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고, 실용성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로 대표되는 새 소비층의 구미를 당길 만한 한 방도 없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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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버리는 현장 직구 방식에서 나아가 매달 새로운 제품을 한정 판매하는 ‘B시리즈’를 선보인다.
사실 컬렉션과 런웨이는 단순히 새 시즌 옷을 선보이는 방식 그 이상의 의미를 담는다. 여기엔 디자이너의 예술적, 모험적, 실험적 관점이 응집해 있다. 런웨이를 통해 새로운 시도가 벌어지고 대중이 그것을 수용하는 일정 시간을 거쳐 패션 산업이 지금의 발전을 이뤄왔다. 다만 지금의 우리는 그 간극을 좁히기엔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한마디로 참을성이 없다. 사진 한 장으로 접한 예술적인 옷을 6개월이나 기다려서 손에 넣기보단, 지금 당장 구입하고 해시태그를 통해 ‘좋아요’ 숫자를 늘리는 방식으로 하이패션을 소비한다. ‘See Now, Buy Now’ 즉, 쇼가 끝난 직후 일부 제품을 바로 구매할 수 있는 ‘현장 직구’ 방식을 차용한 하이패션 브랜드들이 점차 늘어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2016 F/W 시즌 톰포드와 버버리로부터 시작된 이 흐름은 갖은 진통 끝에 랄프 로렌, 겐조, 알토, 마르케스 알메이다 등 셀 수 없이 다양한 하우스에서 순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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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열린 2019 S/S 타미 나우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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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S/S 타미힐피거 X 젠다야 협업 캡슐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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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필름 〈Buy Less, Dress Up〉의 한 장면.
소비자 친화적 접근법은 셀러브리티를 활용했을 때 더욱 효과적이다. 타미힐피거는 대중에 친숙한 이미지를 영민하게 활용한다. 스타 디자이너를 영입하는 대신 지지 하디드, 젠다야 등 대중에 인기 있는 셀럽만 쏙쏙 골라 협업 컬렉션을 선보인다. ‘타미 나우(Tommy Now)’라 명명된 이벤트는 현장 직구 방식과 맞물려 2018년에는 이를 시도하기 전인 2015년도보다 무려 9억 달러가 넘는 순매출액을 기록했다. 대중친화적 매체로 컬렉션의 빈자리를 메우는 하우스도 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그 주인공이다. 이번 시즌 쇼 대신 공개된 〈Buy Less, Dress Up〉이라는 타이틀의 디지털 룩북은 유기농 코튼과 재활용 원단 등 지속 가능한 소재를 활용한 펑키하고 파격적인 비주얼로 오래도록 잔상을 남겼다. 게다가 그 이유가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함이란다. 언제 어디서든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 단 5초 만에 지루함을 느끼고, 사회와 환경 문제에도 민감한 요즘 세대에게 다가가는 이보다 확실한 방법이 또 있을까? 오늘날 패션 비즈니스는 복잡다단하고 섬세하다. 판타지를 자극하며 멋지고 예쁘면 잘 팔리던 호시절은 끝났다. 제아무리 역사 깊은 하우스와 예술성 뛰어난 스타 디자이너일지라도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컬렉션 없는 하이패션은 혁명이 아닌 진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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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웨이 대신 디지털 룩북을 선보인 비비안 웨스트우드 2019 S/S 컬렉션.
이미지 출처 : www.imaxtree.com, www.instagr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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