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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2016.02.20

윤리의 패션

제인 버킨은 에르메스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악어 가죽 버킨 백의 이름을 변경해달라 요청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북극을 살리자는 슬로건이 적힌 티셔츠를 입혔다.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그 어떤 것보다 가장 자극적이고 소비적인 패션 산업에서 환경적 윤리와 도덕이란 과연 무엇인가?

최근 콩으로 만든 고기를 이용한 중동 요리나 콜드 프레스 주스와 같이 비건 음식을 즐기려 노력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주저했던 운동이나 식이요법을 시작하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주변에 늘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광적으로 쇼핑을 즐기는 대신 가구나 식물을 사기 시작했고, 흠뻑 마시고 취하기보다는 언제든지 자연으로 가득한 시골로 떠날 궁리를 하고 있다. 소박하고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마치 새로운 유행처럼 번지는 듯 보였다. 그 누구보다 자극적이고 화려한 패션의 흐름을 재빨리 파악해야 하는 나와 주변 사람들의 이런 모습은 그야말로 가히 ‘역설적’이다.

이런 시점에서 “잔인하게 도살당한 악어의 가죽을 사용한 버킨 백에서 내 이름을 더 이상 사용하지 마세요”라고 외친 제인 버킨의 선언은 최근 주변의 흐름을 단숨에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평소 채식주의자이자 사회운동가로 활동하는 제인 버킨이 주장한 도덕적인 윤리의식이 요즘 젊은이들이 지향하는 ‘자연적인 것을 예찬하며 살아가는 소박하고 풍만한 삶(Slow-Life)’과 하나의 고리로 연결된 것이다. 문득 ‘무엇’이 아니라 ‘어떤’이 중요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삶을 살아가고 어떤 방식으로 행복할 것인가처럼 자연과 더불어 사는 여유롭고 풍요로운 태도에 좀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여하튼 파리 최고의 하우스가 한 여가수를 위해 탄생시킨 가방과 그 가방에 갑작스레 반기를 든 여가수의 이야기는 몇 달 전 동물보호단체인 ‘PETA’에서 에르메스에 악어나 뱀, 타조를 잔인하게 죽여 만드는 가방 제조를 중단해 달라는 강력한 요구를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질 좋은 가죽 가방이 더 이상 열광해야 할 대상이 아닌 모순적인 위기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 대목이다. 그뿐이 아니다. 자신이 만드는 모든 것에 모피나 가죽은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디자이너인 스텔라 매카트니는 지난달, 아르헨티나에 있는 그들의 울 공급업체와의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양털을 절단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녀는 개인 계정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패션은 동물의 권리를 위해 앞장서야 하고, 아울러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업체를 철저하게 관찰해야 합니다”라고 포스팅하며 동물과 환경 보호의 필요성에 대해 주장했다. 언제나 모피나 가죽을 사용하고 입는 디자이너와 스타들을 야만적이라 표현하며 극도로 혐오했던 스텔라 매카트니다. 모피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패리스 힐튼이 극도로 싫어하는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가죽을 사용한 가방으로 시작해 지금의 위치에 오른 구찌 그룹에서 스텔라 매카트니를 영입하기 위해 셀 수 없는 노력과 접촉을 시도한 것은 유명한 에피소드이기도 하지 않나. 동물의 가죽을 사용하지 않은 채 지속 가능한 하이패션을 추구하고 있는 그녀의 고집스러운 태도와 강경한 모습은 지금 패션이 직면한 환경의 위기가 얼마나 크고 무서운 것인가를 암시한다. 무엇보다 언제나 ‘Buy Less, Choose Well, Make It Last’를 주장하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또한 지난 7월, 그녀의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Save The Artic’이라 적힌 티셔츠를 입힌 채 사진가 앤디 고츠의 앞에 세웠다. 오직 북극을 살리자는 것이 취지였다. 파멜라 앤더슨이나 케이트 모스, 조지 클루니 등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저명한 인물들이 대거 동참했는데, 점점 소멸되고 있는 북극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지가 얼마나 지대한지를 증명하는 캠페인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니 꽤 많은 브랜드들이 묵묵히 환경을 보호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H&M은 컨셔스 라인을 통해 재생 가능한 소재만을 사용하고 있고, 이둔이나 오가닉 바이 존 패트릭, 맥 앤 넷 등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오직 윤리적인 섬유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데 오롯이 집중한다. 하지만 단순히 천연 소재를 사용하거나 오염물질을 적게 배출하는 새로운 방식을 활용하는 것을 넘어 그 이면에 숨은 노동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2013년 4월,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한 의류공장 붕괴 사고는 인도나 네팔 등의 후진국에서 벌어지는 노동 착취 현상과 패션의 추악한 실태를 보여준 중요한 사건 중 하나다.

패션이야말로 소비와 가장 밀접하며 소비가 없이는 결코 성장할 수 없는, 어찌 보면 가장 사치스럽고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3세계의 의류 산업 노동자들이 16시간 동안 일해 받는 돈이 고작 2유로라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물론 이를 통해 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경쟁력 있는 가격대를 형성할 수 있었겠지만.) 생분해성 섬유를 활용하거나 동물 가죽이 아닌 인조 가죽을 사용하는 것, 제3세계의 노동자들에게 착취가 아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 또한 지금의 패션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이며, 윤리적 패션을 실현하는 가장 올바른 방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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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ane Birkin
악어 가죽을 사용한 버킨 백에서 자신의 이름을 제외해달라 요구한 제인 버킨. 예전, 가죽 버킨 백을 들고 있던 제인 버킨이 낯설다.

2, 5 Patagonia
페트병을 활용한 순수 원단을 사용하는 파타고니아는 가장 대표적인 윤리 패션 기업 중 하나다.

3, 6, 7, 8, 9 Stella McCartney
재생 가능한 소재만으로도 충분히 하이패션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 하는 스텔라 매카트니의 수려한 컬렉션.

4, 10. 11 Shrimps
페이크 퍼만 취급하는 영국 기반의 쉬림프.


친환경적이면서도 윤리적인 패션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다 보니 이번 겨울을 견디기 위해 좋은 오리털 점퍼나 모피 코트를 염탐하고 있던 스스로가 뻔뻔하고 세속적으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온갖 생각이 뒤엉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윤리적 패션을 실현하기 위해 그저 가죽이나 모피와 같은 동물 소재만 피하면 되는 걸까? 아니면 친환경 소재의 옷을 구매하더라도 만약 그 브랜드에서 여전히 가죽이나 모피를 다룬다면 취급조차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혹은 노동 착취를 당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구매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더욱 면면히, 더욱 깊숙이 파고들수록 패션 속에서 윤리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것 자체가 어쩐지 말이 되지 않는 일처럼 귀찮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무시하고 지낸다면 그 자체가 더욱 불편하지 않을까 싶다. 여전히 나는 좋은 가죽 재킷과 모피 코트를 입고 싶다. 모피 코트를 입는 사람을 머릿속이 텅 빈 야만인으로 취급하거나, 가죽 가방을 탐하는 마음을 탐욕스러움으로 치부하는 것 또한 전혀 하고 싶지 않다. 윤리적 패션이라는 것은 의무나 제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씩 나와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지구, 이 모든 소비를 가능하게 한 제3세계 사람들을 생각하려고 한다. 페이크 모피나 가죽에 관심을 돌리고, 입지 않는 옷은 아름다운가게와 같은 곳에 기부하고, 충동적 소비를 줄이려고 한다. 이런 사소한 마음과 다짐이야말로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인 패션 세계를 형성할 수 있는 시발점이라 믿기 때문이다. 몇몇 의식 있는 디자이너들이 외치는 시대적 요구, 즉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고스란히 보전하고자 하는 친환경적인 의식과 윤리적 관점은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들이 반드시 인지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싶다. 패션이 주는 즐거움은 그대로 유지하되 새로운 방향으로의 사고와 의식의 전환이 필요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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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Organic by John Patrik
재생 가능한 100% 오가닉 코튼만 고집하는 존 패트릭의 오가닉.

3, 4, 5 Edun
록 그룹 U2의 보컬인 보노와 그녀의 부인이 만든 이둔의 취지는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 개발도상국의 국민들을 돕는 것이다.

6, 7, 8, 9 Vivienne Westwood
유니세프와 북극을 보호하는 캠페인을 슬로건 티셔츠를 통해 진행한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그녀의 친구들.

10 H&M
H&M 매장에 비치된 의류 수거함에서 수거된 면을 활용하여 만든 데님 컬렉션은 그들이 얼마나 명민한 기업인지를 절실히 보여준다.
#패션 #환경보호 #환경 #친환경 #비건 #윤리적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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