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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019.07.20

잠을 잃은 호텔, 밤을 그리다

호텔의 밤이 불을 켠다. 지금 새로 그려지는 잠의 지형도, 24시간짜리 밤의 출현에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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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다 자거나, 자다 깨서 책을 보거나. 북 앤드 베드.
돈 주고 잡은 호텔에서 한숨도 자지 못하는 밤이 있다. 2박 3일 예정으로 정한 일정이 1박 3일이 돼버리는 경우가 있다. 호텔의 방값이 1박에 대한 비용이라면, 터무니없이 슬픈 밤의 이야기다. 어처구니없게도 애써 찾아간 호텔이 고작 짐을 보관하는 로커 신세가 되고 만다. 한편, 애써 호텔을 잡아놓고 잠을 미루고 싶은 밤도 있다. 여행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사방에 볼거리가 천지인지라, 어젯밤 스무 시간은 족히 잤으니까, 가끔은 잠을 밀어내고 싶은 밤이 찾아온다. 여행이란 이름의 비일상에서 꾸준히 변화하고 새로움을 길어내는 호텔들이 최근 잠을 잊은 공간들을 선보인다. 침실이 책장과 책장 사이 파묻히고, 창문 밖으로 괴수 영화 주인공 얼굴이 보이고, 객실 벽지의 그림이 문양의 수준을 넘어 방을 압도하는 호텔들은, 이미 수면을 취하는 방으로서의 호텔을 포기했다. 해가 지고 밤이 짙어지면 으레 불을 끄고 잠에 드는 게 상식이고 일상이라지만, 밤은 어쩌면 그보다 더 넓은 세계를 품고 있다. 잠이 찾아오지 않은 밤, 시간은 비일상의 비일상이 되어 묘한 밤을 자아낸다. 나츠메 소세키가 열두 번의 꿈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길어냈듯(<몽십야>), 버지니아 울프가 많은 여성 작가들과의 대화로 수많은 밤을 하얗게 지샜듯(<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 밤은 때때로 아직 오지 않은, 우리가 몰랐던 시간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어둠이 드리워진 밤, 환한 불빛의 호텔에서 밤의 새로운 지형이 그려지고 있다.

카사 캠퍼 인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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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에 쓰여진 51개 서로 다른 숫자가 51개 아이덴티티의 밤으로 자리하는 카사 캠퍼.
호텔을 확인할 수 있는 건 건물 정면의 작은 빨간 로고뿐. 2005년 바르셀로나에 이어 2009년 오픈한 베를린의 카사 캠퍼는 개인의 자리가 선연한 호텔이다. 가격에 따라 차이는 나도 똑같은 빌딩, 똑같은 호텔 안에 획일적으로 반복되는 시간에서 카사 캠퍼는 베를린 특유의 감각으로 객실을 개별화한다. 바우하우스 시절의 조명 버튼부터 블랙 컬러의 전화기, 모든 객실 창에 쓰여진 1부터 51까지의 숫자는 호텔 안 객실의 서로 다른 아이덴티티의 숫자이기도 하다. ‘계단을 타요. 더 건강하게.’ 이곳의 엘리베이터 버튼 뒤에 이런 메시지가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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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더더기 없이 심플한 이곳의 객실은 레드와 블랙의 두 컬러만으로 감각을 보여준다.

마가스인 교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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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수 있는 잡지’로 만들어진 교토의 오감 컬처 체험 호텔, 마가스인 교토.
‘잘 수 있는 OO’의 궁극인 듯 싶지만 2016년 5월 교토에 오픈한 ‘마가스인 교토(MAGASINN KYOTO)’는 그 엉뚱한 아이디어의 시작이다. 주인장 이와자키 타츠야가 디자인 설계와 커뮤니케이션 관련 회사에서 샐러리맨으로 일하던 시절부터 갖고 있던 아이디어를 퇴사한 후, 잡화점을 운영하면서 조그맣게 펼쳐낸 공간이 ‘잘 수 있는 잡지’ 마가스인 교토다. “‘잘 수 있는’ 곱하기 OO이란 프레임이 재미있다 생각했다. 교토에서 잡화점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 하룻밤 묵으면서 써보고 산다면 정직한 서비스라 좋겠다고. 그랬더니 요시타카가 재빠르게 체재 시간을 활용한 콘셉트의 호텔을 이미 시작해버렸다.” 요시타카는 같은 해 교토에 문을 연 숙박형 아트 스페이스 교토 아트 호스텔 쿠마구스크의 오너이고, 이와자키와는 친분이 두텁다.
마가스인 교토의 홈페이지는 잡지를 제작할 때 편집팀과 교열팀 사이에 오고가는 교정지의 바탕을 베이스로 한다. ‘만지고, 써보고, 하룻밤 묵고, 살 수 있는, 오감을 풀로 사용한 컬처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모토로 하는 만큼, 이곳은 완성형의 공간이 아닌, 투숙하는 사람에 따라 결을 달리하는 호텔이기도 하다. 하룻밤 1팀으로 인원을 제한하고, 2층에 객실이, 1층엔 카페, 갤러리, 티셔츠나 간단한 잡화, 그리고 책들이 진열된 숍이 마련되어 있다. ‘에디토리얼 하우스’라 이름 짓고, ‘잘 수 있는 잡지’를 생각했다. 기획은 3개월에 한 번 주기로 교체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계간지. 첫 번째 기획은 ‘책 : 책을 체험하다’였고, 교토의 서점 유이 북스(ユイブックス)와 힘을 모아 책장을 채우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낭독회도 열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요리를 만들어서 제공하는 풍경은 이런 엉뚱한 상상 속이 아니면 펼쳐지기 힘들다. 이와자키 편집장은 “잡지는 재밌는 사람을 모으는 역할이 있지 않나. 사람들을 모아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일을 나라는 사람과 링크시키자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잡화점이란 물건 중심에서 사람 중심의 잘 수 있는 잡지가 태어난 배경이다. 잡지를 보다 잠이 들어버린 밤, 펼쳐 보지 못했던 페이지엔 어쩌면 이런 그림이 그려져 있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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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엔 잡화점과 카페, 2층엔 객실. 이곳의 주인 이와자키 타츠야의 직함은 편집장이다.

루부르 피라미드 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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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30일 하루 한정으로 펼쳐진 루브르의 밤자리.
지난 4월 루브르박물관은 만우절 거짓말 같은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루브르 피라미드를 기념해 그 안에서의 1박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에어비앤비(Airbnb)와 함께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 피라미드를 본떠 제작된 하얀 텐트 안에 머무르며, 모나리자 그림 앞에서 와인잔을 기울이고 나폴레옹 3세 방에서 저녁시간을 갖고, 프렌치 음악의 BGM을 들으며 잠이 드는 밤은 분명 어디에도 없던 밤의 풍경이다. 루브르박물관의 디렉팅 매니저 앤 로레 베아트릭스(Anne Laure Beatrix)는 “많은 사람들이 한밤중에 박물관을 돌아다니길 꿈꾼다는 걸 안다” 고 말했는데, 벤 스틸러의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를 제외하면, 지난 4월 30일 루브르박물관의 호텔은 아마 세계 최초로 박물관에 차려진 밤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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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에서의 호화로운 1박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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