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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019.11.11

내추럴 와인이 힙한 이유

요즘은 더 이상 누가 더 비싼 와인을 마시는지는 관심이 없다. 대신 “그게 뭔데?”라는 질문을 하게 만드는 내추럴 와인이 힙하게 대접 받고 있다.

2016년 여름 프라하에서였다. 내가 내추럴 와인을 처음 접했던 날이다. 여행을 가면 꼭 그 도시의 <미슐랭> 레스토랑은 스타건 가이드건 빠뜨리지 않고 가보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프라하 국립오페라극장 1층에 있는 <미슐랭 가이드> 레스토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 스테이크 코스요리와 함께 여러 가지 맥주를 추천 받아서 마셨는데, 직원이 “더 재밌는 거 추천해줄까?” 해서 마셨던 게 바로 오렌지 와인이었다. 슬로베니아의 오렌지 와인이라고 하면서 여러 가지 설명을 해줬다. (참고로, 오렌지 와인은 오렌지로 만들어서 오렌지 와인이 아니라 오렌지색을 띄어 오렌지 와인이라 불린다. 내추럴 와인 카테고리에 들어간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디엄 바디의 오렌지 와인이 스테이크와 페어링도 아주 좋았다. 탄산감이라 느껴질 만한 톡 쏘는 산미에 기존의 와인에서 느껴지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맛이라 오렌지로 만든 것이라고 했어도 믿었을 거다. “이게 뭐지?” 첫 모금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나왔다. 그래서 그때의 특별했던 감동은 여전히 아련하게 남아 있는데, 이만큼 인상적이었던 오렌지 와인은 후에 만나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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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에서 처음 오렌지 와인을 마셨을 때만 해도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만 알음알음 거론되던 내추럴 와인이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의 힙스터들이 사랑하는 와인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인기는 쉬이 사라질 것 같지 않다. 그 이유가 뭘까? 가장 먼저 소비자들이 변했다.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많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식품에서조차 화학물질로 공정된 제품보다는 신선하고 건강한 제품을 찾는다. 그런 의미에서 친환경농법으로 재배된 포도에 이산화황이 거의 들어가지 않거나 제한적으로 들어가는 전통적 양조방식으로 만들어진 내추럴 와인은 지금 현대 소비자들의 간지러운 속을 긁어준 것이나 마찬가지. 일반 소매점에서 팔지 않는다는 점도 매력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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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 알마테 스페인 내추럴 와인 개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생산자인 마에스트로 테헤로의 와이너리에서 연간 2만 병 한정으로 생산한다. 손으로 일일이 수확한 포도를 스테인리스스틸 탱크에서 자연 효모로 발효시킨 뒤 병입한다. 견과류와 베리향, 초콜릿의 아로마가 느껴진다. 알코올 14%, 750ml 3만원대.
마트에서 쉽게 와인 한 병 살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함과 동시에 와인에 대한 지식과 소비 수준 자체가 높아졌다. 이제 더 이상 누가 더 비싼 와인을 마시고 SNS에 인증하고 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다는 말이다. 그보다는 누가 더 새롭고 ‘힙한’ 와인을 경험하는지가 더 중요해진 시대이다. 이때 나타난 게 내추럴 와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내추럴 와인을 취급하는 바 또는 와인숍 정보도 아직 적은 편이라 관심이 있어야만 찾을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매니악한 느낌을 심어준다. 한남동의 모 내추럴 와인바는 다녀간 손님의 소개로만 예약할 수 있게끔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 또 하나의 덕후 문화로 각광 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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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바모얼 귀여운 빈티지를 가진 로바모어는 러브(Love)와 아모르(Amor)를 합쳐 만든 단어다. 해발 770~1000m의 석회질, 점토질 토양에서 수확한 포도를 수확해 약 일주일 동안 침용한 뒤 스테인리스스틸 탱크와 밤나무통에서 자연 효모로 발효시킨다. 연간 1만 병 한정으로 생산한다. 알코올 12.5%, 750ml 5만원대.
그렇다고 내추럴 와인이 힙하기만 한건 아니다. 가장 큰 매력은 전형적인 맛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와인의 생산지에 따라 공식처럼 기대되는 기존의 맛을 예상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샤블리라면 미네랄리티 이런 공식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 마치 랜덤 박스의 선물을 기다리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구체적으로 이해해보자면, 올가닉 와인과 바이오 다이내믹 와인은 기존의 양조과정을 거쳐 기존의 와인과 비슷한 맛을 내는 반면, 내추럴 와인은 화학적 첨가를 거의 하지 않는 양조법을 진행함으로써 이제까지 와인에서 느끼지 못했던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이산화황이 들어가지 않아 와인을 오픈한 후 산소와 만나게 되면 산화가 더 빨리 진행되는 편인데, 이때의 모습이 일반 와인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변하면서 기존의 와인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맛을 찾을 수 있다는 것 또한 매력적이다. 내가 지금까지 프라하에서의 오렌지 와인을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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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마르시아노 화성인이라는 뜻의 엘 마르시아노. 해발 1000m의 화강암 지대에 위치한 포토밭에서 생산되는데, 이 지역에서 UFO가 많이 목격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상으로 만들어진 이름과 레이블이다. 깐깐한 와인 품평가 로버트 파커의 점수를 90점 받아 내추럴 와인계에서 핫하게 인기를 얻고 있다. 알코올 15%, 750ml 5만원대.
마지막으로 내추럴 와인은 개성 있고 재밌다. 라벨부터 와인 자체의 색감까지 개성 있고 재밌다. 기존의 와인 라벨은 가문의 문양과 재배된 지역 등급 등 똑같은 규칙 안에서 움직이지만 내추럴 와인은 그런 게 없다. 개성이 톡톡 튄다는 매력이 있다. ‘와인이 뭐 그게 그거지’라는 사람들이라면 그 생각을 확실하게 바꿔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내추럴 와인의 힙함이 반갑다. 레드, 화이트, 로제로 한정되어 있던 와인 리스트에 내추럴 와인이라는 선택지가 또 하나 생겨난 즐거움이니까!
EXPERT PROFILE : 최소진
와인을 좋아하며 기록하는 삶을 중시하는 작가 겸 출판인이자 마케터. 소소하게 와인을 음미하며 느낀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담은 책 <몰라도, 와인>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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