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GLES

메뉴
Search
마이페이지

Life2020.01.09

도시의 차가운 아스팔트와 회색 빛 타인

도시에 태어났다. 회색빛 빌딩에 차디찬 아스팔트. 그곳에 고향의 푸근함은 스며들지 않고, 타인은 점점 타인이 되어간다. 몹시도 추웠던 밤, 지하철 손잡이에 남은 누군가의 체온이 느껴졌다.

null
택시를 타지 않기로 마음먹고 3년이 흘렀다. 10년 넘게 마감 생활을 하며, 택시 없이 못 살던 내가 택시 없는 1000일을 넘게 보냈다. 운이 좋지 않으면 반말을 듣고, 까딱하면 아침부터 담배 연기에, 부러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쪼그라져 화나는 시간이, 택시 문 닫듯 마음도 닫게 했다. 인도를 걷다 마주오는 사람은 비껴갈 맘이 별로 없고, 평지여야 할 인도는 곳곳이 굴곡이라 보이지 않는 돌부리에 걸리고, 러쉬아워 지하철이라도 타면 신경은 곤두서 조바심이 인다. 내리기도 전 문을 닫아버리는 버스에선 두 정거장 전부터 마음이 가시방석. 고작 거리에 나왔을 뿐인데, 이만큼의 실패가 쌓여간다. 전동 바이크, 자전거도로, 기술은 발달해, 환경은 이슈가 돼, 전에 없던 궁리가 새어나오지만, 정작 인도를 활보하는 오토바이에 나는 수도 없이 놀란다. 길가에 늘어선 택시, 인도를 치고 들어온 SUV 승용차, 엄연히 법으로 정해진 질서는 어느새 밀려나 ‘다들 하니까’, 차를 피해 걷는 게 일상이 되었다. 달리는 차, 주차된 차, 그리고 그걸 피해 걷는 사람들. 타인의 자리는 남아 있지 않다.

타인과 타인이라 해도, 도시의 타인이라 해도 그곳에 계절은 있다. 사람은 누구나 함께하며 만들어가는 자신이 있고, 그건 곧 어떤 타인도 완전한 타인일 순 없다는 이야기이고, 그렇게 느껴지는 타인의 체온을 도시의 계절처럼 기억한다. 오래전 영화 <타인의 취향>에서 감독 아네스 자우이는 차이로 드러나는 취향의 거리를 별거 아닌 타인의 풍경처럼 묘사했는데, 영화이긴 하나, 알 수 없는 우연, 예고 없던 마주침, 왜인지 스쳐간 누군가의 발걸음 이후 벌어지는 이곳의 일이기도 하다. 편견과 선입견, 외면이 걷히고 타인의 시간이 드러난다. 하지만 현실에서 택배는 언제부터인가 물건을 문 앞에 둔 채 벨만 누르고 가버리고, 카페에선 신용카드를 점원이 아닌 단말기에 직접 꽂아야 하고, 택시들이 진을 친 버스정류장에선 한 차선, 때로는 두 차선이나 앞에 나가 버스를 타야 한다. 버스 곳곳에 쓰여 있는 ‘벨을 누른 뒤 정차 후 일어나라’는 말은, 내릴 곳을 놓쳐 고생을 하기 딱 좋을 조언이 되어버렸다.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는 “사람은 다수의 사람들이 반응하는 행동을 사회적 믿음이POINT라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는데, 익숙해져버린 비상식의 상식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법이 있기 앞서, 도덕을 말하기 이전, 도시는 다수에 숨기 시작했다. 타인을 잃은 수많은 개인들, 각자의 사정만이 평행선을 걷다 충돌하는 교차로. 체인 커피숍 카운터엔 오늘도 픽업을 종용하는 진동음만이 세차게 울리고 있다.

얼마 전 서울시는 택시 불만을 해결하기 위한 S-택시란 어플을 공개했다. 늦은 밤, 특히나 연말연시면 유독 심해지는 승차 거부, 외국인을 상대로 한 바가지요금, 차내 흡연을 방지하기 위한 벌금제 등 승객의 편의를 위한 조치라 하지만, 전에 없던 차가운 바람이 아린 계절이다. 택시를 타지 않기로 마음먹은 3년, 내게 스쳐간 건 도덕을 위압하는 제재, 선의가 실종된 현실의 고육지책, 타인을 타인에 옭아매는 도시의 고장난 계절 같은 풍경이었다. 타인을 망각한 도시에서, 바깥은 겨울. 지하철에 핑크색 임산부 양보석을 만들고, 모든 음식점 내 흡연실을 없애고,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휴지통을 없애고, 플라스틱 스트로우를 만들지만, 거리엔 번듯이 흡연을 하고 꽁초를 버리는 사람이 있고, 길가 곳곳에 쓰레기가 발에 치인다. 지난 11월 포천시 한 식당 여주인은 근처 야산에 투기된 쓰레기 탓에 “하루 파리 40마리를 잡았다”는 하소연을 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어차피 내가 아닌 타인의 사정. 선의와 도덕의 자리를 의무와 제도, 급조한 법들이 장악하는 사이, 도시는 망각의 길을 걷고 있다. 그곳에서 타인을 상상한다. 도시는 타인의 거리이고, 그곳엔 나의 시간이 흘러가고, 마이클 이그나티에프가 <The Ordinary Virture>에서 ‘서서히 서로를 알아가고, 눈 마주침을 주고받고, 코너를 돌아 맥주 6팩을 사고 돌아오며 그곳에 속함을 느낀다’고 설명했던, 모럴의 오퍼레이션이 작동한다. 타인이란, 어쩌면 그저 조금 낯선 ‘우리’. 화장실을 가는 누군가의 머리는 영화관 화면을 가리고, 왜인지 큰 목청을 타고난 누군가는 카페에서 이어폰 볼륨을 높이게 하지만, 곁에 흘러가는 계절, 타인의 계절을 생각한다. 그곳에 남아 있는 나의 오늘을 생각한다. 잠시 잊어버린, 도시의 계절을 위해, 그렇게 너를 한 번 돌아본다.
null
익명의 시대, 이름 모를 타인이 살아가는 거리에 남은 누군가의 흔적은 애잔하고 멜랑콜리한 장면으로 떠오르지만, 모럴이 실종된 사회, 그 장면은 어디에도 없는 시대 고발이 된다. 지난 4월 22일, 세계 지구의 날, 홍콩에선 얼굴만을 도려낸 이름 모를 세 사람의 사진이 거리를 도배했다. 무채색 바탕에 무표정의, 익명을 한, 어딘가 음산한 느낌마저 주는 타인의 얼굴. 환경을 지키자는, 쓰레기를 줄이자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거리의 버려진 담배 꽁초를 추출해 꽁초, 쓰레기의 주인을 찾아내는 다소 살벌한 기획이었다. 미래의 사진 같은 포스터는 일종의 경고처럼 보이기까지 하지만, 누군가가 남긴, 설령 쓰레기 투기라는 나쁜 행동이라 해도, 타인의 흔적을 찾아가는 건, 포기하지 않는 오늘의 물컹한 가능성, 다짐처럼도 다가온다. 프로젝트를 진행한 단체는 “문제의 인식과 행동의 변화를 권하는 메시지”라 밝혔고, 참고로 누구도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서울 #도시 #타인의취향 #도시의모럴
<싱글즈>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재배포 등을 금합니다.
좋아요
목록보기


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URL복사

해당 페이지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해당 페이지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가 필요합니다.
나의 포인트 :

주소찾기

닫기
주소검색

동, 읍, 면, 기관, 학교 등의 이름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