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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020.07.20

일상을 이야기하다

젊은 소설가들은 국가, 민족, 종교와 같은 거대담론 대신 반복되는 일상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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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든 신성 같은 신인 작가가 출현하기 마련이지만, 최근 8090년생 젊은 소설가들의 활약이 특히나 두드러진다. 신춘문예 혹은 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 등단했던 이전과 달리 입소문을 타고 출판사와 정식 계약을 맺거나 영화 시나리오, 웹 소설 등이 신간 소설로 출간되면서 재능 있는 작가들이 등장했다. 출간 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 웹진, 독립출판 등에서 팬덤이 형성된 작가도 다수다. 젊은 작가들은 철학적 사유나 역사적 대서사를 다루지 않는다. 마치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일상의 고민을 위트 있는 문장으로 쓸 뿐이다. 때로는 심심하기 그지없고, 또 때로는 하이퍼 리얼리즘이 소설 속에 녹아 있어 섬뜩하다. 아이돌 팬덤, 권고사직, 퀴어처럼 우리 가까이에 있지만 눈여겨보지 못했던 참신한 소재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단조로운 일상이 무겁게 느껴질 때 젊은 소설가의 작품을 권한다. 소설이 우리의 삶과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책을 내려놓을 수 없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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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인간> <13일의 김남우> 김동식, 요다 <피프티 피플> 정세랑, 창비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창비 <피구왕 서영> 황유미, 빌리버튼
2000년대 전까지 소설가가 되거나 책을 출간하는 유일한 길은 신춘문예나 문학상을 수상하는 것뿐이었다. 최근에는 뉴스레터, 독립문학잡지처럼 문학, 출판계에 새로운 플랫폼이 증가하면서 소설가가 되는 길이나 작품이 인기를 얻는 방식 역시 다양해지고 있다. 성수동 지하 주물공장에서 10년 넘게 지퍼와 단추를 만들다가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 게시판에 올린 소설로 책 <회색인간> <13일의 김남우> 등을 출간한 작가 김동식이 대표적인 예다. 장르, 플랫폼과 무관하게 사람들의 공감을 산 글들이 책으로 출간되는 중이다. 그와 비슷한 맥락에 <지구에서 한아뿐> <보건교사 안은영> 등 출간하는 작품마다 큰 인기를 끈 작가 정세랑도 있다. 출판사 편집자였던 그는 지금은 폐간된 장르 문학 잡지 <판타스틱>에 연재한 단편소설이 SF 덕후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작품을 출간할 수 있었다. 이후 병원 안팎의 소시민 50명을 주인공으로 싱크홀 사고, 낙태와 피임, 가습기 살균제 피해 등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다룬 소설 <피프티 피플>로 독자들의 공감을 사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의 작가 장류진은 제21회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했으나 그녀의 작품이 인기를 끈 이유는 그녀가 문학상을 수상했기 때문이 아니다. 7년간 판교 IT 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일의 기쁨과 슬픔>의 배경을 IT 회사로 설정했고 소설 곳곳에 디테일한 묘사를 완성했다. 이후 책의 출간을 앞두고 출판사 창비의 홈페이지에서 작품이 무료 공개되었는데 IT 업계 종사자를 비롯한 직장인들의 공감을 얻어내며 트위터 등을 통해 공유된 링크를 타고 조회수 40만을 기록했다. 또 독립출판 소설인 황유미 작가의 <피구왕 서영>도 같은 경우다. 초등학교 4학년 주인공 이서영이 친구들 사이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그들의 취미와 비위를 맞춰나가는 모습은 어른이 된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아이의 모습에 많은 독자들이 위로를 받았고 그 인기를 타고 정식 단행본으로 출간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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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문학동네 <여름, 스피드> 김봉곤, 문학동네 <시절과 기분> 김봉곤, 창비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창비 <2020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장희원, 문학동네
규정할 수 없는 사랑의 모양 또래의 이성만이 연애 상대자가 되고 노년이 아닌 청년에게만 로맨틱한 사랑이 주어진다고 우리는 단정 지어왔다. 그러나 그것은 틀렸다. 사랑의 주체와 대상, 모양은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주어진 상황이자 선택이다. 그리고 어떤 사랑이든 마음을 채우고 비우며 행복과 상실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확장된 사랑은 담담한 문체로 요즘 소설에 담겨 있다. 어떤 사랑도 세상을 뒤흔들 만큼 특별하거나 절절하지 않다. 그저 개인에게 쏟아지는 경험이다. 레즈비언 커플, 숙모와 조카, 자매 등 여성들의 다양한 관계와 연대를 통해 사랑을 이야기하는 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람>만 보아도 그렇다. 그뿐이 아니다. 등단과 동시에 커밍아웃한 김봉곤은 끊임없이 퀴어를 소재로 1인칭 소설을 쓴다. <여름, 스피드> <시절과 기분> 등을 통해 그는 사랑과 이별, 그속의 상실과 용기처럼 우리 모두가 살면서 한 번쯤 느끼는 감정과 그를 통해 ‘진짜’ 나를 찾는 탐색에 대해 묻는다. 독자들 역시 주체보다는 감정에 몰입한다. 그래서 동성애 남성의 삶을 다룬 박상영의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은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때론 타인의 시선이 개인의 사랑을 규정할 수 있는지 묻기도 한다. <2020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장희원의 <우리의 환대> 역시 가족을 떠나 호주로 간 성소수자 영재를 부모님이 찾아간 내용을 담고 있다. 영재의 다름을 인정할 수 없어 폭행을 가했던 아버지와 그의 다름을 인정하는 호주, 또 그곳에서 찬란하게 자유로운 그의 모습이 교차되며 어느 곳이 진정한 천국과 지옥인지 고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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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최진영, 창비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 민지형, 나비클럽 <화이트 호스> 강화길, 문학동네
지난 몇 년간 사회 전반에 페미니즘이 큰 이슈였다. <82년생 김지영>을 시작으로 소설 분야에서도 여성의 삶, 일상적 소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어왔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 작가들의 목소리는 스펙트럼이 더욱 깊고 넓다. 당숙에게 성폭행당한 18세 이후로 멈춰버린 소녀의 삶을 그린 최진영의 <이제야 언니에게>처럼 짙고 무거운 이야기도 있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불편과 불안에 대해서 말하는 소설도 있다. 지난해 ‘연애가 힘든 영페미를 위한 소설’이라며 이목을 끈 민지형의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는 남자 주인공이 페미니스트가 된 첫사랑과 재회하면서 펼쳐지는 연애를 다룬다. 둘 사이에 벌어지는 젠더 감수성 차이가 이 소설의 큰 줄기다. 또 2020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하며 문학계와 독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작가 강화길의 신간 <화이트 호스>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공포와 폭력을 소재로 긴장감 넘치는 서술을 보여준다. 작가는 신체적 위협을 넘어 소문과 험담, 날이 선 시선처럼 무어라 정확히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여성을 옭아매는 것들을 묘사하며 여성 스릴러란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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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젠> 김남숙, 문학동네 <9번의 일> 김혜진, 한겨레출판
꽤 오래 이어진 취업시장의 불황, 천정부지로 오른 부동산 가격, 팬데믹으로 멈춰버린 일상까지 내일을 기약하기에는 불안정한 요소들이 너무나 많다. 취업, 결혼, 출산, 육아처럼 일련의 과정을 돌파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걸까? 이 질문을 반복하던 밀레니얼 세대 소설가들은 이런 고민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우리의 보이지 않는 미래를 담은 소설이 줄을 잇는다. 김남숙의 <아이젠>은 생활력 없이 예술에만 미친 아버지와 사고로 지적장애를 갖게 된 언니를 가족으로 둔 탓에 생계를 위해 매춘에 뛰어든 ‘나’와 계속해서 엇갈리는 짝남 ‘두치’의 이야기를 그린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타인에게 사랑 받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주인공을 통해 작가는 피기도 전에 저버리는 청춘에 대한 연민을 드러낸다. 또 김혜진의 장편소설 <9번의 일>은 통신회사 설치기사로 일하다가 권고사직을 권유 받는 평범한 주인공을 통해 살아내기 위해 시작한 ‘일’이 일상과 자존감을 좀먹어버리는 역전의 상황을 서술한다. 소설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왜 일을 하는지, 또 그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계속해서 한다면 결국에 닿게 되는 것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나의 일, 노동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책 #독서 #책추천 #젊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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