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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016.04.17

정바비가 스친 세계

언니네이발관의 기타리스트로 시작해 지금은 가을방학, 줄리아 하트, 바비빌까지 세 개의 밴드에서 음악을 하는 송라이터 정바비가 자신의 이름 앞에 ‘에세이스트’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너의 세계를 스칠 때>라는 산문집을 낸 그를 만났다.

정바비의 음악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그에 대해서 맨 처음 갖는 의문은 확실히 다를 것이다. 전자라면 여자의 심리를 귀신처럼 포착해내는 그의 정체가 궁금할 것이고, 후자라면 ‘정바비’가 본명인지부터 궁금할 것이다(물론, 정바비는 가명이다. 공연 도중 지은 ‘외쿡’ 이름일 뿐 의미는 없다). 오렌지색의 강렬한 커버를 펼치면 그 안으로 궁금증을 자아내는 문장들이 이어진다.

‘나는 인기 없는 여자아이가 좋고, 인기 없는 여자아이가 여름을 보내는 방식을 좋아한다(인기 없는 여자아이의 여름 )’, ‘불편의점. 아무리 생각해봐도 불편의점이란 게 하나 정도 있다 해서 나쁠 일은 없을 것 같다(불편의점의 점장이 되고 싶다 )’, ‘다른 사람들은 그냥 웃고 넘기는 눈치였지만 나는 확실히 이런 문제에는 신경이 쓰인다(사랑을 하자고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 같은 문장과 마주치게 되면 당연히 다음 문장을 찾게 된다.

<너의 세계를 스칠 때>라는 ‘감성 돋는’ 제목만 보고 읽기 시작했다가 ‘적지 않은 여자들이 섹스 전, 섹스 중, 섹스 후에 끊임없이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어본다’ 같은 글귀와 마주치면 ‘너의 세계’가 말캉한 피부로 뒤덮인 세계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빵 터지는 유머를 들려주지 않지만 오히려 ‘성마른 야훼도 일주일 걸린 창세를 하루 만에 이룩할 기세로 색종이를 바닥 한가득 한참 어지른 다음’ 같은 문장이나 ‘이탈리아 북서부에 브라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다고 한다. 인구 3만이 채 안 되는, 비유하자면 A컵쯤 되는 아담한 마을인 듯하다. 언젠가 그곳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싶다’ 같은 농을 읽고 있자면 이런 남자와 연애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할 여자들이 제법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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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연애 많이 할 것 같다.
여자와 관계를 만드는 방식 중에 연애가 제일 충실하고 밀도가 높긴 하지만 마땅한 상대를 찾지 못해 한때 쉬기도 했다. 그걸 떠나서 여자를 좋아하고 많이 만나는 편이다. 남자보다 여자와 얘기하는 게 더 재밌지 않은가. 얘깃거리도 많고.

Q 통화 목록에 여자 이름이 더 많나.
일을 해도 여자들과 하게 된다. (여자 멤버 계피와 하는 밴드) ‘가을방학’도 그렇고, 다른 팀에도 여자 멤버가 있고 싱어송라이터 오지은 씨와도 팟캐스트를 하고 있고. 단막극 음악을 한 번 담당했는데 그때도 드라마국에 몇 없다는 여자 PD였고, 여자 스태프들이 많았다. 책을 만드는 데도 다 여자였다. 편집자, 디자이너… 얼마 전에 “난 왜 여자들과만 일하게 될까?”라고 했더니, 친구 왈 “몰라서 묻냐? 여성적인 감수성을 갖고 있고 지금까지 해온 일 자체가 여자들 흥미와 주의를 끄는 일이잖아”라고 하더라.

Q 어떤 사람들은 당신에게 ‘연애 고수 같다’고 하지만 연애를 게임이나 승부로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서 그 표현은 안 어울린다. 오히려 여자들에게 동지애를 느끼는 남자라고 할까. 여자 마음을 잘 아는 비결이 있나.
동지애를 느끼는 면도 있는 것 같다. 비결이라면 관심이 많으니 생각을 많이 하는 정도? 강렬히 욕망하고 흥미를 지닌 대상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감이 없거나 센스가 떨어지더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연애에 대해서 ‘연애는 이렇게 해야 잘할 수 있어’라는 담론은 싫다. 정말 싫은 타입의 여자는 자신이 연애를 할 만큼 해봐서 연애를 잘 매니지먼트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다. 역겹다. 관계의 메커니즘에 대해 잘 안다는 나이 좀 있는 여자가 후배들 상담해주면서 자기가 정답이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연애, 남녀 관계란 것에 대해서 왕도를 안다는 듯 말하는 말투나 문장 맺는 방식이 싫다.

Q 요즘 ‘연애 코칭’ 프로그램이 유행인데 <마녀사냥> 같은 TV프로는 어떤가.
재밌다고 생각한다. 대화거리가 늘었으니까. 세대 차이, 서울과 지방 차이, 남녀 차이에 대해서 인정하게 됐다는 것은 되게 좋은 일이다. 나도 어렸을 때 드라마에서 ‘섹시’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을 보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요즘 애들은 전혀 다르잖은가. 물론 이런 ‘세대 차이 토크’가 결국 ‘꼰대 토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지만,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섹시를 기표와 기의로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흡수한 ‘세대와 섹시란 말을 드라마에서 써도 돼?’ 하며 놀란 세대와 다를 수밖에. 포털의 댓글만 봐도 알 수 있다. 댓글에서 보여지는 남자들의 여과되지 않은 욕망은 무시무시하잖은가. 여자 뒤태 사진만 나와도 ‘저걸 어떻게 하고 싶다’라든지. 그러니 남자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요즘 애들 다 아는 거다. 일부 키보드 워리어나 일베, 히키코모리뿐만 아니라 일반적이고 잘나가는 남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린 게 <마녀사냥>의 역할 아니었나 싶다.

Q 일종의 양성화인 셈이다.
그렇지. 처음에는 소재 하나 던져주고 남자들끼리 킥킥대는 느낌이 좋았는데, 요즘에는 진지하게 코칭을 하니까 안 보게 된다. 누군가 고민이 있을 때 나이가 있고 세상사도 좀 아는 사람이라면 정말로 폐색감이 크겠지만, 이삼십대의 연애는 사실 다 거기서 거기이지 않은가. 그냥 자기 일이니까 크게 느껴지고 예외적으로 느껴지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는 것만 확인해줘도 많은 것들이 풀린다고 본다. 그런데, 요즘은 ‘즉문즉설’을 하는 느낌이다.

Q 책을 읽고 정바비도 (요즘의) 성시경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기본 스탠스가 달라 보인다. ‘꽃을 말리며’라는 글에서 ‘연애와 연애가 아닌 것’을 나눴던데 ‘이것이 연애다’라는 기준이 있나.
연애는 바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해도 동해도 남해도 있다. 그런데 ‘이것이 연애다’라고 하는 것은 동해를 본 사람이 ‘바다는 동해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Q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의 이상형에 가까워지기 위해 애쓰다 그렇게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자기 혐오가 시작되는 것 같다.
예전에 배우 김주혁이 인터뷰에서 한 얘기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이전 여자친구에 대해서 ‘여자의 혼인 적령기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는데 헤어지게 돼서 미안하다’는 식의 얘기를 했는데 동감이 되고 신선했다. 난 스무 살 때 29살 여자친구를 사귀었고, 그 다음에는 5살 연상이었고 군대 다녀와서는 한두 살 연상, 다음은 동갑내기를 거쳐 지금은 연하를 만난다. 어쩌다 보니 계속해서 상대가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인 셈인데, 그 나이대가 한국 여자에게는 굉장히 혼란스럽고 중요하지 않은가. 노처녀로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인터체인지라고 볼 수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자꾸 내가 ‘폐를 끼친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결혼할 것도 아니고 1~2년 사귀다가 헤어지거나 5~6년 사귀다가 헤어지면 더 큰 폐이고. 어차피 헤어질 거니까. 그럴수록 내가 진짜 잘해야 하는데 잘 안 한다. 솔직히 여자들이 연애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남자가 연애하는 목적은 뻔하다. 되게 단순한데. 요조의 노래 중에 ‘연애는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라는 곡이 있는데, 질문이 잘못된 거다. 왜가 중요한 거 아닌가. 왜 ‘연애는 왜 하지’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왜가 해결되면 어떻게도 자연스럽게 해결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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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터넷에서 ‘뇌구조’ 그림이 한 번씩 화제가 된다. 정바비의 뇌에서 연애는 몇 퍼센트를 차지할까.
솔직히 얘기하면, 연애에 관심이 있다기보다 섹스에 관심이 있고 섹스의 대상으로서의 여자에 관심이 있다. 이 존재는 어떤 존재이길래 나에게 이런 쾌락을 주지? 같은. 그런데 심지어 가끔씩 대화도 통하니까.

Q 언제부터 그렇게 결론 내렸나.
되게 자연스러운 생각인 것 같은데?

Q 섹스라는 표현이 나와서 말인데 ‘연인, 부부간 성관계를 지칭하는 말’이라는 설문조사 결과에 대한 글(사랑을 하고자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이 재밌다. 섹스를 섹스라 부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진달까.
하나의 곡을 써서 발표를 하고 다시 피드백을 얻는 과정 속에 창작자가 느낄 수 있는 행복의 단계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처음 멜로디가 떠올랐을 때, 가사를 붙였을 때, 실제로 녹음실에서 녹음해서 귀로 듣게 됐을 때, 그게 시장에 나와서 사람들이 듣고 있을 때, 라디오에서 나올 때, 공연에서 연주하게 될 때, 팔려서 나중에 돈이 들어올 때처럼. 이 여러 단계에서 나는 처음에 멜로디에 가사를 붙일 때가 제일 좋다. 그 관점을 연애에 대입해보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은 이 여자가 나에게 넘어올 때다. 긴가민가하다가 나에게 넘어오는 그때가 제일 짜릿하다. 섹스보다도 오히려 세상 어느 남자한테나 갈 수 있는데 나한테 왔구나 할 때, 온오프가 돌아설 때가 제일 짜릿하다.

Q 짜릿함을 반복적으로 찾는 것은 아닌가 보다.
그럴 순 없다. 왜냐면 그냥 온오프야 막 돌아갈 수 있겠지만 돌아간 것 자체가 큰 기쁨이 되려면 상대가 내게 의미 있는 사람이어야 하니까. 의미 있는 사람을 오프에서 온으로 돌릴 때 내 두뇌 회전도 엄청 빨라지고 시간과 공도 들이겠지만, 그렇게 되는 사람은 흔치 않다.

Q 여자의 마음을 그렇게 잘 아는데도 과거에 사귀던 사람과 다투거나 헤어진 건 왜인가.
섹스라는 게 전반적인 남녀 관계나 남녀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같은 것들을 시사하고 있다고 본다. 일단 성기 구조도 그렇고 남자의 정자 생산 사이클과 여자가 평생 사용할 난자를 쌓아두고 조금씩 쓰는 구조인 것도. 이렇게 섹스라는 ‘알고리즘’이 섹스가 아닌 남녀의 차이를 설명할 때도 유용하다. 섹스라는 게 남자가 주도하는 것 같지만 시작하고 5분이 지나면 그 다음부터는 여자의 게임이다. 왜냐하면 남자는 삽입 이후에는 사정을 향해 가는 것이고 삽입과 사정 사이에는 아무것도, 콘텐츠가 없다. 여자는 그 사이에 수많은 것들이 있지 않은가. 그 알고리즘을 연애에 비유하자면, 관계가 시작하면 누가 더 많이 사랑하고를 떠나 연애란 여자의 게임이라는 얘기가 된다.

Q 대표적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 얘기가 자주 등장한다. 여자를 보면 신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어떻게 이토록 예측 불가능한 존재가 있을 수 있나 생각해보면 신이 만들지 않고서야.
경이의 대상이긴 하다. 신이 있다면 굉장히 짓궂은 존재이지 않을까. 그런 존재가 오히려 계속해서 남자를 욕망하게 만들었으니까. 하하.

Q 블로그 프로필에 ‘송라이터, 에세이스트’라고 써놓은 게 인상적이었다. 에세이스트라고 불리고자 하는 의지가 읽혔다.
평소 진화심리학이라든지 동물학에 기반해 사회를 관찰하는 데 관심이 많아서 진화생물학자인 도킨스에게 감명을 많이 받았는데, 그의 문장이 또 엄청나게 좋다. 내가 에세이스트로서 고민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어떻게 영미권의 훌륭한 에세이적인 전통을 한국어로 풀어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잘 쓰고 문장 좋은 분들이 굉장히 많지만 에세이적인 글쓰기가 딱히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신변잡기적 수필도 큰 의미에서 에세이가 포괄하고 있어야겠지만 에세이를 읽는 맛은, 하나의 아이디어를 방계로 둘러싸고 있는 수없이 많은 또 다른 교양이나 아이디어가 하나의 에세이를 형식적 미학적으로 완결시켜서 읽을수록 여러 가지 좋은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번역투의 문장에서 나도 자유롭지 못하지만 한국어로 좋은 에세이를 쓰고 싶다.

Q 가수 이승환은 19금 콘서트도 하고 최근 앨범에는 야한 노래도 실었다. ‘너에게만 반응해’ 같은 곡인데, 그런 노래 만들어볼 생각 없나.
하하하, 섹드립인데? 좋다. 우리나라엔 야한 노래가 별로 없어서. ‘흑형’들 기운 좀 받아야 정말 음탕한 노래가 나올 것 같다.

Q 요즘도 후배들이 아침부터 야동 보내주나.
야동까지는 아니고 야한 링크 정도?

Q 그나저나 케이트 업턴에 대해서 알게 된 게 내가 책을 읽고 얻은 가장 큰 소득이다.
그녀는 21세기의 마릴린 먼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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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세계를 스칠 때 정바비, 알에이치코리아
스스로를 몽상가, 망상가, 감상가라고 표현한 뮤지션이 쾌락주의자인 자신을 솔직히 드러난 첫 번째 에세이다. 자신의 연애를 ‘낭만과 각성’이라는 두 단어가 참 적절히 표현해주고 있다고 말하는 그의 글들은 연애를 떠나서도 낭만적이고 보는 이들에게 각성하게 하는 은근한 힘이 있다.
#싱글즈 #피플 #워크 #정바비 #너의세계를스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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