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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018.10.17

우아한 외면의 기술

일과 삶의 평화로운 균형을 침범하는 ‘퇴근 후 카톡’에 대처하는 우아한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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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처 C는 나와 1:1 대화창을 개인 메모장쯤으로 여기는 눈치다. 내게 할 말이 있으면 본능에 충실해 그때가 언제든 일단 보내고 본다. 자려고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C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라는 배너 알람에 놀라 메시지를 확인하면 ‘제가 내일 오전에 회의가 있는데 까먹을 것 같아서 미리 말씀 드려요’라며 업무 지시를 남기는 식이다. 미리 공지한 휴가 기간에도 다르지 않다. 일을 하다 필요한 자료와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갑자기 생각이 나서’라며 지식인에 질문하듯 수시로 메시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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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함에는 무례함으로 응수한다. 불같이 화를 내고 매너와 상식을 따져가며 싸움을 하는 건 최후의 보루다. 큰 에너지를 쏟지 않고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앱 속 편의 기능을 이용하는 거다. 카카오톡에는 대화방을 선택해 알람을 끌 수 있는 기능이 있다. 대화창의 정렬 순서 설정도 ‘최근 대화순’으로 바꿔 퇴근 후 밀린 카톡에 답을 할수록 C와의 대화가 점점 밀려 밑으로 내려가도록 만든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속이라도 편하니까. 이때 중요한 건 다음날 출근을 할 때까지 답을 하지 않는 단호함을 유지하는 태도.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보내주신 메시지 출근 후 확인했습니다”라며 뻔뻔하게 일을 시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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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대리에게 성실한 모습을 지나치게 어필한 탓일까? 그가 야근을 하는 날이면 오후 7시 이후 어김없이 나를 찾는 알람이 울린다. 늘 시작은 ‘미안한데’라는 정중한 대사다. 바로 답을 하지 않을 때 전화 폭격이 이어지는 걸 보면 진짜 미안한 것 같지는 않다. 평소 일을 할 때 후배를 어시스턴트로 부리기 좋아하는 B는 필요한 자료를 절대 직접 찾는 법이 없다. 그리고 그의 고정픽은 늘 나다. 퇴근해도 원격으로 일을 해야 하니 그가 야근할 것 이라는 소식이 들리면 야근 수당이라도 받게 차라리 함께 야근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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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당신은 너무 싹싹한 후배였다. 더 늦기 전에 선을 그어야 그의 갑질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태도는 지나치게 상사의 일정에 맞추지 않는 거다. 퇴근 후 B의 메시 지에 “대리님 제가 퇴근을 해서 자료를 볼 수 없습니다. 내일 오전에는 회의가 있고, 오후 3시까지 보내드릴게요”라며 그의 갑작스러운 부탁을 무리해서 처리하지 않는다. 이때 데드라인을 정하고 시간을 지키는 건 일 잘하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로 착각하기 쉽다. 원래 괴롭히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상대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 알지 못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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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침부터 B차장의 웃음이 카카오톡에 쏟아진 다. 내가 병맛 개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안 B는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듯 웃긴 이미지와 짤을 내게 수시로 보낸다. ‘ㅋㅋㅋㅋㅋㅋ’가 쏟아지고 ‘미쳤지?’라며 격한 반응을 바라는 멘트도 함께 다. 그의 기대에 부응하는 리액션을 보이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비슷한 시리즈를 계속 보내며 하루 종일 대화를 이어가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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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평화를 위해 5000원만 투자하자. 영혼이 담긴 리액션을 하기 피곤하다면 이모티콘을 후하게 남발하는 거다. 아무 말 없이 이모티콘만 보내는 메시지에는 당신과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핸드폰에 기본으로 깔린 무료 이모티콘이 아닌 유료 이모티콘을 보내는 건 최소한의 성의다. 메시지의 알림이 울린 다음 2시간의 텀을 갖고 답장을 보내는 것도 방법이다. B가 묻지 않아도 “데이트 중이라 이제 확 인했어요”라고 늦은 이유를 설명하며 주말에는 사생활에 집중 하느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뉘앙스도 함께 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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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모르는 꼰대력으로 단체 채팅방에서 유난히 존재감을 어필하려는 팀장 J. 직원들과 메신저로 이야기를 하는 게 이 시대의 ‘쿨’한 상사라는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업무와 관련된 공지도 회사 메일 대신 카톡을 이용하고 의견 취합을 할 때도 메신저의 ‘투표’ 기능을 이용한다. 주말이면 상하관계가 없는 가족 같은 팀을 지향한답시고 취미를 즐기는 일상을 우리에게 굳이 공유한다. 대화방의 최고권력자인 팀장의 말을 ‘읽씹’ 할 수 없는 우리는 주말이면 리액션 당번을 정해 돌아가며 감정 노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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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에 민감한(?) 상사에게 ‘인싸’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한다. 젊은 팀장이 있는 세련된 조직 문화를 어필하는 식이다. 퇴근 후 에는 카톡 대신 메일로 업무 내용을 주고받는 걸 공론화해 매너 있는 상사로 존경 받는다는 친구네 회사 팀장, 점심 회식을 주도 하는 해외파 부장 등의 사례를 은근슬쩍 흘린다. 설득력 있는 대기업의 사례도 예로 들면 좋다. 팀원들의 적극적인 리액션이 더 해지면 더 효과적이다. 세련된 상사가 되고 싶은 야망이 있기 때 문에 빠른 시간 안에 변화를 기대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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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후 처음 맞이한 후배 B에게 좋은 선배가 되고 싶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배우는 응용력에 가르치는 맛도 쏠쏠해 업무 방법과 함께 똑 떨어지게 일하는 인상을 풍길 수 있는 꿀팁까지 대방출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결국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메일을 보낸 뒤 문자로 재공지를 하면 좋다는 조언 을 한 적이 있는데, 이게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 됐다. 신입사원 특유의 쌩쌩함으로 회사 노트북을 들고 퇴근해 일을 한 뒤 너무나 성실하게 내게 재공지를 한다. 답을 하기도 안 하기도 난감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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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무구한 후배에게 신뢰할 수 있는 선배의 말은 곧 진리다. 게다가 지금 B 는 당신을 믿고 따르기 때문에 상황을 쉽게 바꿀 수 있다. 평소와 다름없이 업무 얘기를 하다가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알려 주는 방법으로 접근하자. 이때 중요한 건 후배의 편에 서서 조언을 해준다는 뉘앙스. 변화하는 기업 문화와 사회 정책을 곁들여 B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논리적인 근거 또한 중요하다. 대화를 시작할 때는 B의 능력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을 잊지 말자.
이미지 출처 영화<HER>, <로맨틱 홀리데이>, <캐롤>, <미스 슬로운>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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