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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019.03.22

주 52시간을 방해하는 자

사무실이라는 공간만 벗어났다고 퇴근이 아니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망치는 진짜 원인은 상황이 아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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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최근 한 친구는 휴대폰 속 저장된 회사 사람들의 연락처 이름 앞에 알파벳 "Z"를 붙였다. 메신저나 연락처에 저장된 이름은 자음 순서로 목록에 뜨는데 주말, 퇴근 후에 스마트폰을 하면서는 그 이름조차 보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다. 사무실 밖을 벗어나면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소중히 음미하고 싶다. 이를 위해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었고 저녁 7시가 되면 사무실 불이 꺼지는 등 각종 제도가 등장했지만 아직 시대의 흐름이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퇴근 후 카톡을 그저 "수다"라고만 생각하며 자신의 무례를 합리화한다. 주 52시간 근무 제도로 내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시대를 거스른 사람이 변하기를 기다리기보다 현명하게 응수해 제 살 길을 찾는 쪽이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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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부장과 대화의 끝은 언제나 분노 일발 장전이다. 그의 방에 다녀온 사람에게는 약 30분간 말을 걸지 않는 게 우리 팀의 암묵적인 규칙이다. 보고를 목적으로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15분이 지나면 누구든 고개를 숙이고 얼굴은 잘 익은 사과처럼 빨갛게 달아오른다. 보고를 하다 지금이라도 탈모 관리를 시작해야 한다는 핀잔으로 대화가 끝나고, 기획안을 들고 시작한 대화는 내 키에 적당한 몸무게와 다이어트 종용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언젠가는 가사노동의 형평성에 대해 언쟁을 하기도 했다. 감정을 건드린 대화와 가스라이팅성 비난은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 나를 쫓아다니며 괴롭힌다. 퇴근 후 만난 사람과도 자리에 앉자마자 그의 욕을 시작하니 결국 회사 일의 연장선이 되는 셈이다.
SOLUTION 서면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한다.
상대의 말투와 표정, 시선의 불필요한 폭력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은 사람과는 텍스트 플랫폼을 활용하는 편이 안전하다. 사람은 바꿔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나보다 더 오랜 시간을 살아온 사람을 바꾸겠다는 호기로운 생각은 애초에 버리는 게 좋다. 오랜 시간 고착된 누군가의 세계에 변화를 주겠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고효율의 52시간 근무를 위해서는 나의 컨디션을 지키는 것 또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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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할 때마다 틈새를 노리는 업무 관련 피드백, 협업 프로젝트의 진행 관련 메일을 꼭 퇴근 후 9~10시에 보내는 거래처 직원 C. 그녀의 메일에서 제일 황당한 건 파일명에 꼭 날짜를 함께 적는다는 사실이다. 퇴근 후 보낸 메일에 다음 날 출근해 답장하는 게 당연한 이치건만, 일의 진행이 조금이라도 더뎌지면 내 피드백이 늦어서 그렇다는 식으로 말을 돌린다. 어쩐지 나만 피드백이 늦은 사람처럼 보여진다.
SOLUTION 평화와 정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평화를 선택하면 그녀의 수법에 질질 끌려다닐 걸 각오해야 한다.
정의를 택한다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마음으로 메일의 회신 버튼을 누르자. 이후 참조 버튼을 클릭해 우리 팀 거래처의 관리자를 모두 소환한다. "퇴근 후 메일을 보내주셔서 답장이 늦었습니다"라며 메일 도착 시간에 대한 언급을 빠뜨리지 않는 게 관건. 물론 자신의 위치와 평판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먹히는 방법이다. 상사를 향한 컴플레인은 평소의 신뢰가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직 때가 아니다 싶으면 적어도 두 달간 바짝 달라진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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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내 브랜드를 차리는 게 꿈이야”를 입버릇처럼 내뱉는 C과장은 벌써 프리랜서와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한다. 출근을 해도 그의 자리에 사람이 앉아 있는 풍경을 통 볼 수 없다. 남들이 일할 때 불필요한 외부 미팅, 개인적인 사업 준비의 시간을 누리다 오후 5~6시쯤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한다. 문제는 자신의 업무 시작과 동시에 협력이 필요한 일에 만만한 사람을 수시로 불러들인다는 사실이다.
SOLUTION 마이웨이에는 마이웨이로 응수하는 편이 속 편하다.
능력이 부족하면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지만 이기주의적 심보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너그러운 마음을 베풀지 않아도 괜찮다. 퇴근 후 쏟아지는 그의 업무 요청에는 “내일 출근해서 확인할게요”라는 말이 가장 명확하다. 물론 상사인 그의 디렉팅이나 확인이 필요 한 일을 처리할 때는 그의 스케줄을 고려해 넉넉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점이 번거롭지만 여기에도 아예 답이 없는 건 아니다. 탄력근무제가 도입되지 않은 회사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일을 하는 건 근무 태만과 다름없다. 그의 괴롭힘이 계속된다면 그와 나눈 모든 문서와 답장의 시간을 기록해 훗날 인사팀에 상담을 요청하는 최후의 수단이 아직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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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근이 잦은 업무 특성상 우리 팀은 사내 메신저 대신 카카오톡을 애용한다. 프로젝트에 따라 소모임 형태의 단체방이 많아 늘 정리하는 게 일이지만 가장 괴로운 건 팀장 D가 있는 방이다. 그는 개인 카톡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수시로 메시지를 보낸다. 덕분에 이 방은 바람 잘 날 없이 알람이 울린다. 우리 모두 그런 그를 ‘꼰대’ 라고 부르지만 정작 본인은 최신 유행 이모티콘을 부지런히 사 모으며 ‘인싸’의 길을 걷고 싶어한다.
SOLUTION 보란 듯이 덥석 엎드린다.
조직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쿨한 신세대 상사가 되고 모순적인 그의 태도를 공략하면 쉽다. 답장이 늦었을 때는 오바다 싶을 정도의 과한 양해의 말을 쓰고 구구절절 사연을 적어 보낸다. 퇴근 이 후 성실한 여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방해한 방해꾼이라는 인상을 풍겨야 한다. 물꼬만 잘 터두면 그의 호출 횟수를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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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와 고백하지만 나는 아기 친화적인 사람이 아니다. 이제 갓 돌 지난 아이를 키우며 워킹맘으로 생활하는 C차장은 내가 존경하는 선배 중 한 명 이다. 하지만 몇 달 전부터 C에게 불편한 지점이 하나 생겼다. 퇴근 후 C는 아이 사진과 함께 “이모,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내일도 OO이가 응원할 게요!”와 같은 깜찍한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주말 오전에는 침 범벅인 아이의 사진을 보내며 “힐링짤이야. 너무 귀엽지~”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녀의 모성이 얼마나 지극한지 잘 알기 때문에 메시지를 읽고 나면 뭐라고 답장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고민을 한다. 퇴근 후 자신을 졸졸 따르는 아이의 모습이 힐링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저 상사가 보낸 문제 메시지 한 통일 따름이다.
SOLUTION 무관심이 답이다.
회사에서 얽힌 관계는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상하관계일 수밖에 없다. C는 순수한 마음으로 보냈을지 모르지만 받는 이의 입장에서는 감정노동과 다름없다. 이런 사적인 메시지는 애초에 꼭 답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버리자. 아무래도 C와의 관계를 생각해서 아예 답장을 안 할 수는 없겠지만 이모티콘을 하나 보낸다거나 짧은 대답으로 영혼 없는 호응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때 C가 불쾌한 감정을 보이면 그와 지금이라도 사이가 멀어진 것에 감사해하면 된다. 이런 부류의 자매품으로 아들 바보, 딸 바보, 조카 바보가 된 동료와 상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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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B의 근무 태도는 "열정" 그 자체다. 그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손바닥만 한 수첩을 가지고 쪼르르 달려와 메모하는 모습과 헷갈리는 부분은 질문해서 확실하게 처리하는 꼼꼼함에 감동 받은 건 나뿐만이 아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B의 가장 큰 문제는 맺고 끊음이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퇴근하고 텅빈 사무실에 앉아 혼자 야근을 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나오면 직속 상사인 내게 카톡을 보낸다. 다행인 건 스스로 이게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는 있다는 사실이다. 구구절절 양해의 말과 함께 물어보는 질문은 물론 5분 안에 답변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런 일이 점점 잦아진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SOLUTION 단호박이 답이다.
일에 대한 예의와 정의가 확립되지 않은 새싹에게는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는 것도 선배의 도리다. 퇴근 후 보낸 카톡 메시지를 의식적으로 읽지 않거나 읽더라도 답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음 날 출근 후에는 평소와 같이 친절하게 답해주는 걸 잊지 않는다. 퇴근 후에 메시지를 보내는 일의 무례함에 대한 설명을 덧붙일 필요는 없다. 같은 팀에 소속된 부하 직원을 혼내고 적으로 만들어봤자 결국 나만 손해다. 한 팀이라는 소속감을 잃지 않는 선에서 조련을 해야 한다. 선배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상처받지 않도록 가르침과 함께 꾸준한 칭찬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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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 B가 야근을 하는 날은 일이 없더라도 차라리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 있는 편이 이롭다. "마녀"로 통하는 팀장 B는 전생에 군대 조교가 아니었을 까 생각될 정도로 성격이 급하다. 자신이 지시한 일은 마감 전부터 독촉하고 시간도 칼같이 지킨다. 물론 관리자들은 이런 그녀를 깊이 신뢰하고 총애한다. 팀원으로서 가장 괴로운 건 회사를 위해 그녀가 하는 것처럼 후배들 또한 같은 마음으로 일하기를 원하는 이기적인 마음이다. 그녀의 메시지에 10분 이내에 답을 하지 않으면 언제든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한다. 퇴근 후 그녀의 뾰족한 목소리에 시달리는 게 싫어서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확인하는 버릇까지 생겼다.
SOLUTION 그간 쓰고 있던 온순한 양의 탈을 벗어야 할 때다.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부터 B의 메시지와 전화에 두세 시간 동안 답을 하지 않는다. 그사이 B에게서 온 전화가 있으면 바로 전화를 걸어 호출에 응답하지 못한 이유를 당당하게 말한다. 이때 중요한 건 죄송하거나 반성하는 뉘앙스를 풍겨서는 안 된다는 것. 자기 계발을 위한 수업이나 운동을 핑계로 삼아 사생활을 중요시하고 일보다 나의 삶이 더 중요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풍기는 것도 좋다. "요즘 애들"이라는 비난을 들을 수 있지만 크게 상관할 바는 아니다. 이 방법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팀원들의 힘이 더해져야 한 다. 자기 확신이 대단한 B 또한 다수의 일관된 행동에는 의심을 품게 되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영화 <돈>, <오피스>, <아는 남자>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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