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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016.03.26

‘선’봐서 결혼할 수 있나요?

결혼은 일종의 계약이며 사랑보다 조건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한 암묵적인 합의. 그래서 선은 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여자와 그래서 죽어도 보기 싫다고 생각하는 여자. 과연 당신에게 선은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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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ISODE 1 } 백번 선본 여자
해가 바뀌면서 그녀는 스물여덟에서 스물아홉이 되었다. 아직은 일 년이 남은 건가? 아니면 이제 겨우 일 년밖에 남지 않은 건가. 그녀의 마음은 후자에 더 가깝다. 스스로 정한 ‘미혼이어도 괜찮은 나이’ 혹은 ‘결혼해야 할 마지노선’의 나이가 서른인 그녀. 그녀는 이제 국내 최대 규모의 결혼정보업체 회원이 된 지 3년차이고, 지난 12월에는 기어이 전문 뚜쟁이 아줌마들의 손길마저 빌리고 있다. 도대체가 자신이 뭐가 부족해서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못한 채 원치 않는 싱글로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업의 임원인 아버지. 그리고 배울 만큼 배웠으며 무남독녀 외동딸로 곱게 자라 연봉 5000만원이 조금 넘는 회사를 다니고 있는 자신. 이만하면 결혼시장에서 그리 나쁜 물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속된 말로 몇 년째 안 팔리고 있다.
두 군데의 결혼정보업체에다 전문 뚜쟁이 아줌마들이 물어오는 선자리는 토요일, 일요일 모두를 반납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거기에다 부모님의 지인들까지 합세하면 정말이지 그녀는 주말 스케줄표를 따로 작성해야 할 정도로 많은 선을 본다. 그녀와 그녀의 부모님들이 장래 신랑감에게 바라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대기업 혹은 튼튼한 중소기업의 회사원일 것, 너무 마르지 않을 것, 키는 최소한 176cm는 넘을 것, 부모님 모두 생존해 계실 것, 기독교일 것(가능하다면), 그리고 자라는 동안 큰 어려움이 없이 성장했을 것. 이만하면 그녀도, 그녀의 부모님도 결코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웠다고는 할 수 없다. 누구처럼 의사, 변호사 사위를 원하는 것도 아니며 강남의 아파트 아니면 신혼을 시작할 수 없다고 우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배우처럼 근사한 외모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누가 보아도 합당할 정도의 조건. 딱 그 정도인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많은 선을 봐왔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연애나 결혼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그토록이나 많은 선을 봤고 또 조건이 나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그 남들 다 한다는 결혼을 하지 못한 것일까? 그녀는 어쩌면 선이 주는 다음 기회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이 자리, 이 남자가 아니어도 다른 남자를 충분히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사실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도 그녀의 상대방도 모두 첫눈에 반할 만한 인연은 아니었나보다.
고민 끝에 그녀는 자신의 외모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로 했다. 어차피 조건을 맞춰서 하는 결혼이라면 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번의 만남에도 상대방을 반하게 할 만한 외모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그녀는 이제 더 무얼 바꿀 수 있는지, 아니 바꾸어야 하는지 암담하기만 하다.
{ EPISODE 2 } 아직도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여자
사실 서른둘이 될 때까지 그녀는 결혼에 대해 눈곱만큼도 생각이 없었다. 만약 그녀가 결혼할 마음이 있었다면 훨씬 전에 결혼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말하는 뭘 모를 때, 철없을 때 말이다. 하지만 서른둘이 되어 “결혼을 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고, 서른넷이 되었을 때는 ‘이제 정말 결혼해야 하는데’를 지나, ‘너 어쩌려고 이러니?’ 소리를 듣는 서른다섯이 된 올해. 그녀는 갑갑하기만 하다. 법조계에서 유명한 아버지와 교수님 소리를 듣는 자신. 날씬한 몸과 예쁘장한 얼굴을 지니고 있는 그녀는 사실 선시장에서 일등 신부감까지는 아니어도 나이가 차다 못해 조금 넘어버리려 하고 있는 신랑감 후보들 사이에서는 놓치기 아까운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결혼이 이제 절박해져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선이라는 것이 와 닿지가 않았다. 결혼할 마음이 없어 그런 것 아니냐고 오해들 하겠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녀는 비록 결혼이 급함을 넘어서 이제는 가슴께에 체한 것마냥 들어앉았을망정 하나의 상품이 되어 호텔 커피숍에 앉아 조신한 척 어색한 대화를 이어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 모든 게 너무나도 덜떨어진 짓거리 같았다. 어차피 서로의 조건을 보고 나온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설령 서로가 마음에 든다 하더라도 그건 ‘우리 이제부터 요이땅 하고 사귀는 거다’ 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치하단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인연은, 그렇게 이것저것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래 실물은 봐야지 하며 나와서 만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운명적 만남을 외칠 만큼 순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미리 조건을 맞춘 다음 사람을 맞추어보는 선은 질색이었다. 서로의 학벌과 집안과 배경을 체크한 다음 거기서 통과를 해야 비로소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선은 이력서 한 장으로 서류 전형에서 떨어져 면접을 볼 기회조차 없어진 실업자와 같은 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의 선자리에서 그녀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그녀와 결혼을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하고 나온 남자들은 하나같이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들은 좋은 조건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미혼인 그녀에게 혹시 무슨 하자는 없는지, 그리고 그 하자는 주로 외모를 체크하는 선에서 그쳤다. 취미가 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묻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것이었다. 정말로 그녀가 궁금하고 알고 싶다면 그런 몇 가지 질문으로는 절대 그녀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친구들은 아직도 그녀가 꿈을 꾸고 있다고, 그 꿈을 깨지 않는 한 결혼하기 힘들 거라고 충고했지만 그녀의 생각은 확고하다. 더 이상 상대방을 알 수도 또 나를 알게 할 수도 없는 선으로 결혼을 하겠다는 기대는 접기로 했다.
{ EPISODE 3 } 연애 아닌, 결혼을 하고 싶은 여자
그녀가 결혼을 한다고 지인들에게 알렸을 때, 그들은 다들 ‘에이 설마’ 하는 반응을 보였다. 개중 어떤 이들은 아직 한참이나 남은 만우절을 의심하기까지 했다. 그들이 보기에 그녀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서도 잘살 사람처럼 보였다. 선을 보기 전까지 사실 그녀는 결혼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했고 그 행복을 지켜나갈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효도하는 셈 치고 나간 선자리에서 그녀의 생각은 모두 뒤집혔다. 남자에게 연애가 아닌 결혼을 하고 싶다는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그녀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냉정하게 판단하자면 그는 그녀가 만나왔던 많은 남자들보다 잘난 구석이 없는 남자였다. 하지만 그 남자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은 순전히 그 자리가 소개팅이나 미팅, 혹은 오가다 만난 자리가 아닌 선자리였기 때문이리라. 자신은 비록 아무 생각 없이 나갔지만 상대 남자는 결혼을 염두에 두고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녀는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행동하고 생각했다. 늘 장난 같던 연애와 우습게만 보였던 남자들. 어쩌면 그 속에서는 결혼이란 걸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만남이 만남이었던 만큼, 서로가 결혼을 원하게 되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그녀의 연애에는 가타부타 말이 없던 부모님들이었지만 결혼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전면으로 나섰다. 그래서 만약 혼자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겠다며 준비를 했다면 수십 번도 더 깨졌을지도 모를 결혼이라는 걸 진짜로 하게 되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남자에 대한 평가를 혼자가 아닌 가족들과 함께 나누었다. 그리고 그녀는 알게 되었다. 연애 상대와 결혼 상대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다만 언제 어떻게 만나느냐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동안 그녀가 만났던 남자들 중에서는 아마 부모님이 보신다면 훨씬 더 흡족해할 신랑감도 있었겠지만 문제는 그들 중 누구도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혼 후 그녀는 아직까지 여전히 운명의 상대를 만나겠다고 철없는 소리를 해대는 친구들에게 충고한다. 차라리 선을 보라고. 선자리에 나오는 남자가 단순히 연애할 때 만나던 남자들보다 훨씬 근사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가짐이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선,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혼 중에서 아마 가장 행복한 결혼은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이 너무 깊어서 영원히 함께 살기를 약속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이렇게 행복한 결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소개팅이나 미팅과 달리 선은 오직 결혼을 전제로 하는 만남이다.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나왔건 온몸에 가시가 돋을 정도로 심심함을 이기지 못해 나왔건 간에 선자리에 나간다는 것은 좋은 사람을 만나면 결혼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상대방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고 시작하는 선은 그런 만큼 결혼 성공률도 높다. 두 사람의 장단점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조건 정도는 알고 맺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결혼은 조건을 빼고 순수하게 사랑만으로 하기는 조금 힘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높은 성공률에도 불구하고 선은 여전히 부정적인 시선을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조건이 맞지 않으면 처음부터 만남 자체가 성사되지 않으며, 일단 나가면 서로가 서로에게 외모를 보여주고 볼 수밖에 없는 자리가 바로 선이다.
선에 대해 몇 가지 충고를 하자면 다음과 같다. 절대 한 번만 보고 상대방을 다 파악했다고 믿지 말 것. 그것은 첫 번째 에피소드와 같은 불행을 낳게 된다. 그리고 둘째, 선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 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뛰어넘은 무언가를 바란다면 선을 보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게 맞다. 셋째, 일단 선을 보러 나갔다면 진지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결혼은 장난이 아니다. 따라서 그 결혼을 위한 선 역시 장난이 아니다. 정말 결혼이 하고 싶을 때, 그리고 해야겠다고 느낄 때, 그럴 때 선을 보러 나가도 늦지 않다. 단, 선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결국 선을 보건 운명적인 상대를 만나건간에 결혼을 하는 것은 바로 본인, 즉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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