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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018.10.23

정이 뚝 떨어지는 그와의 이별

없던 정도 떨어지게 만드는 최악의 이별. 우리,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며 이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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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크코트와 다이아몬드로 휘감은 강남 사모님룩의 아주머니가 흰 봉투를 냅다 던지며 “어디 너 따위가 감히… 내 아들과 헤어져!” 같은 대사를 날리는 건, 우리 엄마가 빨래 갤 때 틀어놓는 막장 아침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장면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내 일이 될 줄이야. A는 나와 대학 신입생 OT 때 눈이 맞아 장장 9년이나 징글징글하게 사귀었던 내 구남친이었다. 나는 아침잠 많은 A대신 1교시 수업을 대리출석해주고, 훈련소 입소하는 날 논산까지 따라가 울면서 뒤통수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었으며, 그가 제대할 때까지 ‘곰신’ 카페 열혈 회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물론, 내가 먼저 졸업하고 취업한 후 복학한 그가 취업 준비를 할 땐 쥐꼬리만한 내 월급으로 밥도 사먹이고 옷도 사입혀가며 뒷바라지를 했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가장 예뻐야 할 20대를 쓸데없이 허비했다. ‘허비했다’는 뼈아픈 사실을 알려준 사람이 바로 A의 어머니. A가 국내 5대 대기업 중 하나에 입사하게 되자 하루가 다르게 어깨에 힘을 주시더니 “여자가 서른 넘으면 아무래도 임신하기가…” “사실 요즘 연애 오래 한 게 무슨 책임질 일은 아니…” “사람 마음이야 늘 바뀌는 거…” 같은 석연찮은 말줄임표를 남발하시던 어느 날 내게 불쑥 전화를 하셨다. “얘, 너 이제 우리 A 좀 놔줄 때도 되지 않았니?” 그러고 보면 흰 봉투를 미리 준비해서 약속장소까지 나온 드라마 속 ‘사모님’은 차라리 최소한의 성의라도 있는 거였다. (ID_얼마까지알아보고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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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는 다정한 남자였다. 좋게 말하면 다정하고 나쁘게 말하면 ‘이 사람, 혹시 회사에서 일을 안 하나…?’ 싶을 정도로 말이 많았다. 매일 거의 30분 단위로 본인의 행적과 현재의 상태, 향후 2시간 이내의 플랜을 카톡으로 보냈다. “지금 일어났어. 회사 가기 싫당” “자기야, 지금 지하철 사람 넘 많아.” “오늘 점심 김치찌개 먹었어.” “이따 거래처 미팅 갈 건데 가기 시러~” 등등. 그런데 그랬던 B가, 어젯밤까지만 해도 “응~ 잘 자~ 나두 사랑해~(이모티콘)” 하던 B가 그 다음날 아침부터 거짓말처럼 연락이 안 된다면 얼마나 충격이 클지 한번 상상해보라. 처음에는 오늘 좀 바쁜가 보다 했고, 오후가 되자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서 조바심이 났고, 자정이 다 되도록 내 전화에도 카톡에도 답이 없자 이건 분명 사고가 난 게 분명하다 싶어서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제서야 내가 B와 1년 가까이 만났지만 B 본인을 제외하고는 접점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화를 해서 B의 안부를 물어볼 친구, 직장동료의 연락처 하나 없었다. 서울 시내 응급실에 B의 이름으로 실려온 사고 환자가 있는지 수소문이라도 해봐야 하나까지 생각하다 문득, 조금 특이한 B의 이메일 ID가 떠올랐다. 평소 B는 내게 SNS는 안 한다고 했었다. 혹시나 해서 B의 이메일 ID와 같은 ID를 인스타그램에서 검색해봤는데… 오 마이 갓. 이 똥물에 튀겨버릴 놈이 오늘 휴가를 내고 웬 여자랑 부산에 가셨네? 너 이 자식, 인스타그램 친구 공개 기능 모르니…? (ID_거미라도될걸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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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C에게 호감을 느낀 건 우유부단한 요즘 남자들 사이에서 독보적으로 눈에 띄는 그 박력 때문이었다. 매사에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의사표현 확실하고, 맺고 끊음이 분명했다. 지난 10년 간 맨날 간만 보는 간장남, 비리비리한 초식남, 매사에 ‘이런 내 자신이 퍽 맘에 드는 걸’이 디폴트인 토이남, 잘못은 지가 해놓고 뛰어난 말발로 왠지 내가 잘못한 것처럼 만들어버리는 문과남 등에게 지친 내게 C는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결정적으로 “썸? 거절 당하면 쪽팔릴까봐 겁나서 좋아하는 여자에게 좋아한단 말도 제대로 못하는 놈들이 취하는 그 애매모호한 태도요? 난 그거 질색이에요“라는 이 한 마디에 나는 결심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근래 보기 드문 이 야수 같은 남자와 사귀기로.

C가 진짜 야수 같은 남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사귀고 1달이 채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C의 차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어떤 차가 끼어들어서 접촉사고가 날 뻔했다. 다행히 사고는 나지 않았고, 40대 후반 정도로 돼 보이는 상대 차량의 운전자분(남성)이 손을 들며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했는데도 C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 차로 그 차를 가로막아 세웠다. 그러더니 트렁크에서 무려 쇠파이프(…? 대체 그런 게 왜 트렁크에 있지?)를 꺼내더니 운전자분에게 당장 나오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내가 몸을 던져 말리지 않았다면 정말 그 차라도 때려부수었을 기세였다. C는 “네가 타고 있는데 그렇게 위험하게 끼어들어서 너무 화났어!”라고 말했지만, 난 직감했다. 언젠가 저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상대가 내가 될 거란 걸. 그날 이후 C와 안전하게 헤어지는 데까지 총 4개월이 걸렸다. (ID_세이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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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와 사귄 후 내 인생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교훈이 하나 생겼다. 어찌나 주옥 같은지, 할 수만 있다면 내 묘비에 새기고 싶을 정도다. “바람은 실수가 아니라 습관이다.” 단언컨대 D는 내가 그간 사귄 남자를 통틀어 가장 잘생긴 사람이었다. D와 함께 길을 걸으면 지나가는 여자들이 모두 D를 선망의 눈빛으로 한번 쳐다보고 그 다음 약간 의아한 혹은 못마땅한 눈빛(“아니, 니가 대체 무슨 수로 저 남자랑…?”)으로 나를 쳐다보곤 했다. 어쩌면 그런 순간의 만족감이 내가 그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D를 계속 만났던 동력이 됐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귀던 1년 반 동안 D는 정말이지 여자가 끊이질 않았다. ‘만나주지 않으면 약을 먹고 죽겠다’는 구여친부터 시작해 밤늦게 집 앞으로 찾아오는 회사 동료, (D의 진술에 따르면) 회사 워크샵을 갔다가 우연히 같은 숙소 같은 층에 묵어서 알게 된 여자, 심지어 해외 출장으로 탄 항공기의 승무원까지, 잠시 자리를 비웠다 돌아올 때마다 D는 마치 기념품처럼 새로운 여자를 달고 왔다. 물론 그때마다 그는 자신은 결백하다, 21세기 배운 남자답게 그저 여성들에게 매너 있게 대했을 뿐인데 그 여성들이 자신의 ‘신사도’를 개인적 호감으로 오해하고 부나비처럼 달려드는 것 뿐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면서 꼭 이렇게 덧붙였다. “알잖아, 나한텐 너 밖에 없는 거.” 그 잘생긴 얼굴로 그렇게 말할 때마다 그 말을 너무나 믿고 싶었다. 그래서 1년 반이나 끈 거겠지. 결국 D와 헤어지게 된 건, 어느날 D의 핸드폰, 이메일, SNS 등을 하루 서너 시간 파는 걸로도 성에 안 차 ‘미행을… 한번 해볼까…?’라고 생각한 스스로에게 너무나 소스라치게 놀랐기 때문이었다. 더 망가지기 전에 나 자신을 지켜야했다. 사실 D는 나를 만나는 동안 무려 5명과 동시에 사귀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바람은 실수가 아니라 습관이다. (ID_바람바람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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