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한 그 남자

우리는 모두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꿈꾼다. 거리에서 혹은 소개팅에서, 심지어 친구들과 가진 우연한 술자리에서도.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진 그녀들의 ‘웃픈’ 이야기.

null
1 연약하고 깨끗한 문과남
이와이 지의 <러브레터>를 혹시 기억하는가? 바람에 새하얀 커튼이 살포시 흔들리고, 화사하게 햇빛이 창으로 쏟아지는 어느 봄 오후의 도서실. 높고 빳빳한 깃의 교복이 무척이나 잘 어울렸던, 깨끗한 얼굴의 미소년 ‘후지이 이츠키’. 그 손에 펼쳐 든 책. 내가 독서 애호가가 된 데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러브레터>의 그 장면도 한몫했음이 틀림없다. 즐겨 찾던 북카페에서 한 달에 한 권 정해진 책을 읽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 모임을 만든다기에 재빨리 가입했다. 독서 모임에서 첫 번째 과제로 나온 책은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그리고 한 달 뒤,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였다. 빳빳한 하얀 셔츠에 몸에 적당히 붙은 깔끔한 네이비 컬러 바지를 입은 그가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내 머릿속에선 <러브레터> OST가 울려 퍼졌고, 그의 뒤로 망상 속 하얀 커튼이 흩날렸다. 멍하니 그의 얼굴을, 그리고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모습만 바라보다 첫 번째 독서 모임이 끝났다. 재빨리 그에게 다가갔다. 다른 사람이 먼저 나의 ‘후지이 이츠키’를 차지하기 전에.

♥ 첫눈에 반하는 그 남자의 매력 섬세한 문과 타입의 남자. 당신과 취미까지 같다니, 눈과 귀가 즐겁다.
▶ 그 남자, 이러면 위험하다 사실은 그가 책보다 손쉬운 연애를 목적으로 북클럽에 가입했다면?


null
2 사랑은 코끝에서 시작한다
애타는 썸 3개월, 불타는 연애 6개월 뒤 지지부진한 연애 일 년과 치졸한 이별 두 달. 길고 긴 투쟁을 끝내고 하얗게 재가 되어버린 나는 당분간 남자는 쳐다보기도 싫었다. 가끔 안부를 묻고 ‘언제’ 식사나 하자고 흩어지는 말 따위나 나눴던 전 직장 선배가 간곡히 부탁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야, 후배 좋다는 게 뭐니. 우리 팀장님네 막내동생인데 자꾸 좋은 사람 있으면 다리 좀 놔달라고 귀찮게 해. 그런데 얘길 들어보니 괜찮은 남자 같아서… 내가 진짜 밥 거하게 살게! 한 번만 만나주라, 응?” 영 내키지 않았지만 진짜(이번에야말로?) 밥 거하게(드라이에이징 안심 스테이크!) 산다는 말에 나가서 시간이나 때우고 선배 체면도 살려주기로 했던 거다. 그리고… 어떻게 됐냐고? 사실, 나도 내가 금사빠에 지치지도 않는 연애 체질인 줄 몰랐다. 결정타는 바로 그 남자의 향기. 카페에 도착해서 전화를 걸며 먼저 자리를 잡고 있다는 그를 찾는데, 그에게 다가갈수록 익숙한 듯 포근하고 산뜻한 향기가 났다.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기분이 좋아졌고 마주 앉아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눌수록 기분은 더욱더 좋아졌다.

♥ 첫눈에 반하는 그 남자의 매력 냄새 덮는 흔한 탈취제나 뻔한 향수 대신 자기에게 잘 어울리는 향을 알고 있다.
▶ 그 남자, 이러면 위험하다 말초적인 매력에 빠졌나. 이제 이성에 눈을 떠야 할 때다.


null
3 남자는 여자의 미래가 아니다
만나기 전에 ‘카톡’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벌써 그와 반쯤은 사귀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최근에 본 영화부터 키우고 있는 고양이 이름과 품종, 탕수육은 ‘부먹’인지 ‘찍먹’인지, 왜 지금의 직업을 갖게 됐는지,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실컷 수다를 떨었다. 들뜬 나머지 그에게 슬쩍 털어놓았다. “요즘 말 많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에도 별 주목을 받지 못했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좋아해요. 눈 오는 오후에 두 남자가 중국집에 앉아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여자 얘길 하죠. 우리 소개팅 날에 중국요리 먹으면서 낮술 마실까요?” 아, 이게 지금 보니 정말 ‘아무말대잔치’구나. 그나저나 그에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어떤 남자가 먼저 술 마시자는 여자를! 심지어 그가 직접 오후 시간에 한가하게 요리와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는 고급 중식당을 수배했다. 소개팅이 아니라 데이트나 마찬가지. 결국 결전의 그날, 우린 자연스럽게 마주 앉아 뜨겁고 뭉근한 계란탕과 오향장육을 먹었다. 그리고 나는 확신했다. ‘오늘 처음 본 남자와 나는 연애를 하게 될 거야.’ 들뜬 나는 고량주를 많이 마셨다. 그리고 참 많이도 웃었다. 정신을 차리니 낯선 천장이다. 그와의 뜨거운 밤이 드문드문 떠올라 얼굴이 붉어졌다. 다만 그가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 침대 아래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수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메시지 창의 ‘1’도 사라지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 첫눈에 반하는 그 남자의 매력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대화의 기술.
▶ 그 남자, 이러면 위험하다 주선자에게 말 못할 비밀만 선사한 프로 취향 저격꾼. 만남의 성격에 어울리는 거리감을 잊지 말자.


null
4 커피를 외치던 아름다운 청년
나는 ‘흔녀’다. 아주 못난 구석은 없는데 그렇다고 썩 예쁘지도 않고 조금은 소심해 보이는 표정에 대한민국 20대 여자 평균 키, 체지방률 21% 평균 몸매. 바로 거울 속의 나다. 그런 내게도 다가오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다짜고짜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이상한 사람은 아니다. 믿어달라. 꿈에 그리던 이상형이라 계속 주변을 맴돌다가 겨우 용기 내서 말한다. 커피 한잔하지 않겠느냐”고. ‘불가능이란 없다’가 이럴 때 쓰는 말일까? 사실 평범한 여자에게 꽃미남이 줄기차게 대시하는 일은 영화나 순정만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지 않나. 그런데 그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내가 그 남자의 이상형이라고 하지만 상황이 반대로 바뀌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 남자의 훈훈한 외모에 내가 반해버린 것. 결국 우리는 길거리 헌팅, 커피 한 잔을 시작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그에게 평범한 여자를 좋아하는 취향을 안긴 신에게 감사를 하며. 이 일을 겪은 이후에는 집에서 자다가 동네 편의점에 가는 친구들에게 비비크림이라도 바르고 나가라고 말한다.

♥ 첫눈에 반하는 그 남자의 매력 좋은 얼굴. 예쁘기만 한 얼굴과는 다르다.
▶ 그 남자, 이러면 위험하다 미모만 믿고 빠져버리면 눈에 콩깍지가 벗겨진 뒤에는 어떻게 할 텐가.


null
5 프로젝트 최종병기
8개월짜리 프로젝트를 위해 팀을 꾸렸다. 만만하게 전천후로 써먹기 좋은 캐릭터라고 상부에서 협력업체 직원을 한 명 끼워줬다. 그는 협력업체 파견이라는 상황을 종종 잊게 할 만큼 팀 구성원 이상으로 업무를 소화했고, 힘든 상황에서도 모두에게 깍듯했다. 진행 방향에 이견이 있어 설전이 벌어질 때 날 선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역할까지, 팀장인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젠체하지 않고도 사무실의 공기를 지배했다. 게다가 그는 프로젝트가 성공으로 끝나도 성과의 1/n을 챙겨 갈 수 없는 사람. 모두가 그를 편히 여기고 의지했다. 그를 ‘최종병기’라 부른 이유는 정작 따로 있다. 5살 연하인 그와 업무 호흡을 맞춘 첫날, 나는 그에게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자정이 넘도록 그와 마주 앉아 남은 일을 하던 도중 눈이 마주쳤다. ‘꼴깍’ 침을 삼켰다.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키스를 했고, 그대로 아무도 없는 회의실에서 빠르게 그리고 은밀하게 섹스를 즐겼다. 온몸이 저릴 정도로 쾌감을 느끼고 나니 피로가 풀렸다. 우리 관계는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프로젝트는 기한 내에 잘 끝났다. 나는 힘들 때마다 그가 피로를 풀어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 첫눈에 반하는 그 남자의 매력 정신과 육체의 피로를 가시게 하는 힐링 머신.
▶ 그 남자, 이러면 위험하다 사내에 소문을 내거나, 권력 관계에 기반한 직장 내 성추행으로 고발하지 않기를 바라자.


6 매너도 정도껏이지
null
세계적으로 유명한 밴드 내한공연에서 나는 거의 죽을 뻔했다! 30대도 아직 청춘이라 생각하는데 더 청춘인 애들 틈에 껴서 스탠딩 공연을 보는 건 힘에 부쳤다. 이러다 깔려 죽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손 하나가 쑥 들어오더니 나를 끄집어내 구해줬다. “괜찮으세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전 갈게요.” 엥? 생명의 은인이 눈앞에서 떠나려 하고 있었다. 심지어 매너 좋고 성격 좋아 보이며 외모까지 훤칠한 생명의 은인이! 다급한 나머지 그의 손목을 낚아챘다. “저기 너무 고마워서 그러는데 연락처 알려주시면 제가 식사라도 한번 대접할게요.” 공연장을 가득 메운 음악 소리와 관객들의 싱어롱 때문에 소리를 질러가며 그에게 연락처를 얻어냈다. 사례는 됐다고 고개를 흔들며 당연한 일이었다고 한사코 거절하던 그. ‘매너도 정도껏 발휘해야지 혹시 내가 성가신 거 아냐?’ ‘구해놓고 보니 자기 취향이 아니었던 거지.’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도 겨우 받은 전화번호를 지우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메신저에 뜬 그의 프로필 사진을 보며 망상에 빠진다.

♥ 첫눈에 반하는 그 남자의 매력 수고로운 도움을 당연한 것이라 말하는 섹시한 매너.
▶ 그 남자, 이러면 위험하다 기사도 정신은 무릇 내 여자에게만 발휘되어야 하는데 말이지….


null
7 내 가슴보다 닭가슴
반년 전에 큰맘 먹고 산 비싼 치마의 지퍼가 잠기지 않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나는 운동을 할 결심을 했다. 집 근처 피트니스센터에 등록을 했고, 대놓고 PT 영업에 열 올리는 트레이너들을 가뿐하게 피해 일주일에 세 번 상체, 복근, 하체 근력운동 스케줄을 짜고, 마무리로 러닝머신과 로잉머신 인터벌 코스를 유산소운동으로 추가해 나만의 운동 스케줄을 짰다. 항상 비슷한 시간에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니 자주 마주쳐 눈인사 정도는 나누는 사람들이 생겼다. 새로 온 트레이너인 줄 알았던 그도 알고 보니 저녁 시간에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회원이었다. 마르고 가느다란 몸은 그다지 내 흥미를 유발하지 않았다. 취향이 아니랄까. 남자의 몸은 두껍고, 크고 튼튼해야 매력을 느낀다. 그는 허리까지 찰싹 올라붙은 엉덩이와 탄탄한 허벅지, 넓은 어깨와 두툼한 가슴을 가진 남자였다. 여러 번 눈이 마주쳤고, 결국 함께 센터 문을 나서며 집으로 향하다가(집에 가는 길도 같은 방향이다!) 자연스레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 데이트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그날 바로 우리는 동네 치킨집에 들어갔으니까. 그는 치맥을 즐기는 방법이 독특하다. 남자는 가슴살만 골라내 튀김옷을 죄다 벗겨내서 먹었다. 시원한 맥주는 입술만 축이는 정도. 그리고 그와 나눈 대화는 죄다 운동 이야기. 심지어 “불금에는 슈퍼 스쿼트가 어울리죠”라는 말도 했다. 나도 남부럽지 않게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이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니. 혹시 함께 도우며 운동을 할 친구를 구했던 거니?

♥ 첫눈에 반하는 그 남자의 매력 극한의 훈련을 견뎌낸 강인하고 단단한 육체.
▶ 그 남자, 이러면 위험하다 헬스장을 옮기기 전까지 당신은 그의 나르시시즘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


null
8 꿀꺽꿀꺽, 목젖이 다 했다
친구와 친구의 썸남은 죽이 잘 맞았다. 왁자지껄 흥겨운 분위기에 여러 명이 함께 어울리는 걸 좋아했고, 친구의 절친인 나와 썸남의 절친이 엮여 한자리에 불려 나오는 건 둘이 만날 때부터 예고된 일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썸남이 보증한 ‘좋은 남자’와 함께 4명이 술자리에서 어울리게 됐다. 사실 나가기 전에는 친구들이 이야기한 “남자가 ‘좋은 남자’라고 치켜세우는 사람 중에 여자에게도 좋은 남자 역할을 하는 매력적인 사람은 없다”는 말이 떠올랐지만, 속아도 본전이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꽤 괜찮은 남자가 나온 것! 새내기 시절에도 술 대신 콜라만 마셔 빈축을 샀던 내가 ‘병뚜껑 치기, 업다운, 랜덤 게임’으로 이어지는 술자리 게임 3종 세트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와 단순한 친구의 친구 사이를 넘어서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게다가 주변의 분위기도 훈훈했다. 게임이 계속되자 벌주로 마시는 양이 늘고, 결국 한계 주량에 근접했다는 게 느껴졌다. 그도 낌새를 챘는지 “ 씨 술은 이제 제가 다 마실게요”라며 흑기사를 자처한 것. 한 잔, 두 잔, 석 잔… 꿀꺽꿀꺽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눈이 멀었다. 내 술을 달게 삼키던 그 빛나는 목젖. 호쾌한 목 넘김에 반해 연애 시작한 사람, 아직은 나 말곤 못 봤다.

♥ 첫눈에 반하는 그 남자의 매력 목젖? 흠,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 나를 구하는 기사도.
▶ 그 남자, 이러면 위험하다 그저 버려지는 술을 못 견디는 애주가라면?


사진제공 www.shutterstock.com
공유하기 좋아요
#싱글즈 #연애 #사랑 #LOVE

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URL복사

해당 페이지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해당 페이지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가 필요합니다.
나의 포인트 :

주소찾기

닫기
주소검색

동, 읍, 면, 기관, 학교 등의 이름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