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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 신드롬

20세기처럼 로고를 대놓고 드러내는 게 미덕으로 통하는 21세기에 살고 있다.

이번 계절 파리 컬렉션이 끝난 뒤 바로 집으로 달려가 옷장을 뒤졌다. 로고가 큼직하게 새겨진 덕분에 속물적인 것 처럼 치부되어 옷장 속에 말 그대로 처박혀버린 디올의 새들백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스스로가 우스꽝스러워 주저앉아 웃었다. 로고가 다시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나? 고고한 태도로 일관하며 콧대가 한없이 치솟던 하우스들이 몇 년 전부터 자신의 브랜드 이름을 면 티셔츠에 찍어내는 일에 계속해서 혈안이다. 마치 그들이 조롱하던 스트리트 브랜드가 되고 싶다는 듯 말이다. 이런 현상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한 양상이라는 사실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시시각각 변화하며 긴장이 극대화되는 이 구역에서 편집증적인 태도로 완성된 난해하고 특수한 옷보다는 일상적이고 기능적인 옷이 여전히 우위에 있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최근엔 이의 단서를 요란 법석인 80년대 MTV 문화에서 찾던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90년대 길거리 문화에서 차용해 눈에 익숙한 정통적인 로고와 무늬가 마치 한여름 소나기가 퍼붓듯 폭발적으로 쏟아지며 곳곳에 예상치 못한 흔적을 남기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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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그간의 세월 사이 하우스에 새롭게 영입된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나 디올의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와 같은 명민한 디자이너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에겐 다른 디자이너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어떤 집요함이 있다. 하우스의 전통적 유산 속으로 스스로를 강박하며 깊게 파고들어 이를 들여다보는 일이 무엇보다 먼저니까. 과거 속에서 하우스의 궁극적 정체성을 찾고 이를 동시대적 흐름에 맞춰 일상적인 것으로 쉽게 재해석하고야 만다. 그 결과 구찌에서는 GG 금장 로고와 초록과 빨강이 뒤섞인 웹 줄무늬, 복고적인 디아만테 무늬가 꿈결 같은 세부 장식과 더불어 화려하게 돌아왔고, 디올에서는 하우스의 명징한 상징인 ‘D’ 로고가 반복적으로 새겨진 자카드 원단을 복각해 ‘오블리크’라는 이름 아래 90년대 유행하던 로고 백을 다시 세상에 내놓게끔 만들었다. 더욱 놀라운 건 이에 대한 반응이다. 수지 멘키스와 같은 거물급 패션 저널리스트들은 이 로고 아이템이야말로 이번 계절의 가장 절대적이면서 동시에 탁월한 것이라는 찬사를 계속해서 쏟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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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방식으로 로고를 대범하게 드러내는 것도 흔하게 발견된다. 그중에서 포스트 소비에트 문화를 기반으로 한 뎀나 바잘리아의 기가 막힌 로고 활용법은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 비범한 것으로 무미한 충족을 자아내기보다는 전형적인 것을 뒤틀어 기이한 탄성을 자아내는 것이 그의 장기이듯, 90년대를 풍미했던 엄브로나 타미 힐피거와 같은 대중적인 브랜드와 협업해 그 이름을 자신의 옷 위에 큼지막하게 새긴다. 뭔가 보여주기 위해 애쓰지 않은 현실적인 차림 위에 그저 완전무결하게 로고만 새겼는데도 얼음물 한잔 들이켜듯 묵은 피로가 확 가시는 기분이 든다. 한편으로 셰인 올리버와 이자벨라 불리는 90년대 패션을 논함에 있어 결코 잊을 수도 없고 잊히지도 않는 헬무트 랭의 과거 아카이브를 재해석해 ‘리에디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헬무트 랭이 라는 로고가 굵고 선명하게 새겨진 옷과 액세서리는 쇼가 끝난 직후 매장에 걸림과 동시에 품절되어 종적을 감췄다. 이들의 뒤를 이어 세르햇 아이식과 벤자민 알렉산더, 마틴 로즈, 글렌 마틴스, 크리스텔 코샤와 같은 디자이너들 또한 밤과 청년, 거리와 클럽 문화를 고급 기성복에 적용한 로고 플레이를 통해 하이엔드 패션을 새롭게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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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전형적인 로고 플레이를 촌스럽지 않게 소화하지 않기란 참으로 난해하다. 유머와 냉소 사이의 아슬아슬한 지점을 잘 오가야 하는 것이 관건인데, 알 듯 모를 듯 아리송하다면 90년대 힙합 음악가들이나 여배우들의 차림을 유심히 살펴보면 된다. 힙합 음악가들에겐 로고가 크면 클수록, 옷의 품이 넓으면 넓을수록, 신발이 크면 클수록 멋의 궁극적 지표가 됐고, 여배우들에겐 유두가 드러나는 몸에 붙는 로고 티셔츠에 헐렁한 청바지를 입은 채 로고가 큼직하게 새겨진 가방 하나 드는 게 쿨 키즈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무엇보다 이들처럼 일련의 공식이나 법칙을 따르기보다는 본성에 맡긴 채 내키는 대로 입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불현듯 ‘평범함과 진부함이 더 자극적이다’라는 미우치아 프라다의 말이 생각난다. 세속에 대한 회의, 아름다운 것에 대한 피로, 속도 경쟁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이 꽉 뭉친 동시대 패션 속에서 순수한 열정과 말간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던 90년대가 디자이너들에게 더욱 자극적으로 다가온 건 아닌가 싶어서다. 동시에 유행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격 급한 밀레니엄 세대들이 이런 로고 장식을 구시대적 잔해가 아닌 진보적 패션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그저 신기할 뿐이다. 과거와 현재가 미묘하게 서로 맞물려 있는 지금, 이를 대체할 만한 충격적인 무엇이 나오기 전까지 아마 이 로고 플레이는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싱글즈 #패션 #패션뉴스 #로고 #로고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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