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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019.09.10

쇼장에서 생긴 일

당신이 알지 못했던 2019 F/W 패션위크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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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피날레에 등장한 샤넬의 여인들은 가장 행복하고 근사한 모습으로 칼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페넬로페 크루즈는 하얀 꽃 한 송이를 손에 쥔 채 런웨이를 걷기도 했다.
한동안 상업적이고 실용적인 패션이 강조된 덕에 패션위크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비슷한 디자인이 범람했고, 쇼다운 쇼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2019 F/W 시즌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 여겼는데, 예상과는 달리 볼거리가 풍성했다. 우선 빅 하우스에서 데뷔전을 치른 디자이너만 넷이었다. 랑방의 브루노 시아렐리, 니나 리치의 루셰미 보터와 리시 헤레브르 듀오, 라코스테의 루이스 트로터, 그리고 이번 시즌 초미의 관심사였던 보테가 베네타의 다니엘 리다. 심지어 모두 다음 시즌이 기다려질 정도로 꽤 성공적인 컬렉션을 선보였다. 런웨이에 오른 것만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신스틸러의 존재도 한몫했다. 시몬 로샤에는 클로에 셰비니가, 프링글 오브 스코틀랜드에는 픽시 겔도프가, 밧셰바에는 크리스니타 리치가 등장했다. 유명인의 깜짝 출연보다 놀라운 순간도 있었다. 밴드 혁오의 스타일리스트로 알려져 있는 김예영이 발렌시아가 무대에 오른 것은 물론, 오랜만에 파리 패션위크에 참석한 모델 강소영이 셀린느 쇼를 통해 여전한 카리스마를 자랑한 것. 그야말로 서프라이즈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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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는 생각보다 굉장히 순식간에 끝난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디자이너는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전달하면서 동시에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시스 마잔이 무려 300만 개에 달하는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을 바닥에 뿌리며 꿈결같은 런웨이를 만들어내고, 몰리 고다드가 자신의 시그너처 드레스를 좀더 드라마틱하게 소개하기 위해 풍력발전기를 설치한 것처럼 무대 연출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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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아래에 설치된 풍력발전기 덕에 몰리 고다드의 드레스가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장소도 중요하다. 반짝이는 에펠탑을 배경으로 쇼를 펼쳤던 생 로랑이나 굳게 닫혀 있던 루브르 박물관의 빗장을 연 루이 비통이 이슈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디자이너 토모 코이즈미의 경우는 참 흥미롭다. 뉴욕 데뷔 쇼를 다른 브랜드의 매장에서 진행했기 때문이다. 사연은 이렇다. 자일스디컨의 인스타그램에서 토모 코이즈미의 드레스를 발견한 스타일리스트 케이티 그랜드가 이를 뉴욕에 선보이기 위해 친구들을 불러모은 것. 그렇게 귀도 팔라우, 팻 맥그래스, 진순, 타비타 시몬스, 아니타 비튼 그리고 마크 제이콥스로 구성된 엄청난 패션 군단이 그의 뉴욕 진출을 도왔다. 마크는 그가 뉴욕에서 컬렉션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스튜디오를 빌려줬을 뿐 아니라 매디슨가에 자리한 매장까지 쇼장으로 쓰도록 내줬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황홀한 쇼가 펼쳐졌다. 꽃송이처럼 러플을 겹겹이 쌓아 올린 드레스를 마주한다면 누구나 단번에 마음을 빼앗길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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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디슨가에 자리한 마크 제이콥스 매장에서 펼쳐진 토모 코이즈미의 데뷔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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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퀸의 쇼를 한층 극적으로 만들어준 프레야 라이딩스의 라이브 공연.
허스키한 목소리가 극에 달하며 검은색 꽃가루가 휘날리던 피날레 무대는 왠지 가슴 한 켠이 뭉클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1970년대 뉴욕의 아이코닉한 클럽 스튜디오 54를 추억한 마이클 코어스는 또 어땠나. 1990년대 은퇴 이후 오랜만에 런웨이를 밟은 전설적 모델 패티 핸슨의 클로징 워킹이 환호를 받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피날레와 함께 진짜 쇼가 시작된 것. 벨벳 커튼이 걷히며 현란한 조명 아래 오렌지색 재킷을 입은 배리 매닐로우가 ‘코파카바나(Copacabana)’를 열창하며 등장했다. 피날레를 마친 모델들 모두 무대 앞에 모여 춤을 췄으며, 벨라 하디드와 프란 서머즈는 배리 매닐로우의 백댄서를 자처하기도 했다. 흥겨운 리듬에 관객 역시 몸을 들썩일 수밖에. 뉴욕 패션위크 기간 중 가장 신나는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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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매닐로우의 깜짝 등장과 함께 콘서트장으로 변신한 마이클 코어스 쇼장.
평범하지 않은 건 릴라 로즈 쇼도 마찬가지다. 평소 애견인으로도 유명한 디자이너 릴라 로즈는 도그 쇼와 패션쇼를 결합해 이색적인 광경을 연출했다. ‘로즈민스터 도그 쇼(Roseminster Dog Show)’라는 테마 아래 진행된 쇼에는 12명의 모델과 사랑스러운 강아지들, 그리고 종목별로 점수를 매기는 심사위원까지 등장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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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강아지와 함께 등장한 릴라 로즈 쇼의 모델.
좀더 극적인 연출을 시도한 디자이너도 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다. 로즈 맥고완, 카밀라 루더포드, 사라 스톡브리지 등 모델 대신 런웨이에 오른 배우들은 워킹 도중 정해진 자리에 서서 연설을 시작했다. 브렉시트와 기후변화, 패스트 패션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의미 있는 시도이긴 했지만 판매를 목적으로 선보인 패션쇼와는 어울리지 않았다는 빈축을 사기도 했다. 쇼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간에 80에 가까운 나이에도 전하고자 하는 바를 원하는 방식으로 표출해내는 펑크 여왕의 위용이 대단한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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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형태를 빌린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이색 패션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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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날레 행렬과 함께 무반주에 노래를 부르며 등장한 비비안 여사.
이처럼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시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런던 패션위크 도중 전해진 비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칼 라거펠트의 작고 소식이다. 갑작스러운 이별로 칼의 유작을 선보이게 된 샤넬과 펜디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들의 수장을 추도했다. 1965년부터 무려 54년이란 시간을 함께한 펜디는 쇼 말미에 칼을 추모하는 짧은 영상을 공개했고, 피날레에는 데이비드 보위의 ‘히어로즈(Heroes)’를 선곡했다. 쇼 시작 전 1분간 애도의 시간을 가진 샤넬은 칼의 목소리를 담은 오디오를 틀었다. 오랜 친구이자 뮤즈였던 마리아칼라 보스코노를 비롯한 몇몇 모델이 눈물을 참지 못했지만, 칼 라거펠트의 ‘베이비’ 카라 델레바인을 필두로 한 샤넬의 피날레 군단은 애써 가장 밝은 얼굴로 우리의 패션 영웅에게 안녕을 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피날레 곡으로는 펜디와 같은 노래가 흘러나왔고, 칼이 걸어 나오는 대신 관객 모두가 객석에서 일어나 한참이나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패션 역사에 다시 없을 거장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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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디 쇼가 끝나고 스크린을 통해 등장한 칼 라거펠트의 모습에 모두가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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