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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019.12.02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산다

나의 행복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고 라이프스타일과 커리어의 방향을 과감하게 바꾼 사람들을 만났다.


김모아&허남훈
배우 겸 작가 김모아와 감독 허남훈은 집을 없애고 여행하듯 살고, 살 듯 여행을 다닌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이 사는 이 아티스트 커플은 자신들의 발자취를 책, 영상, 음악, 영화, 전시를 아우르며 다양한 콘텐츠로 소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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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을 내 집 마당 삼아 살아가고 매일 창밖으로 풍경이 바뀌는 움직이는 집.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보는 밴 라이프. 김모아, 허남훈 커플은 이 낭만적인 유랑을 나중의 일로 미루고 싶지 않았다.

“지금 못하는 일을 나중에 죽기 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왜 하고 싶은 일을 죽기 전에 해야 해? 과연 그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버킷리스트를 체크리스트처럼 바꾸고 싶었죠.”

밴 라이프도 그중 하나였다. 둘은 신혼집을 과감하게 없애고 2017년 3월 17일부터 꼭 일 년간 길 위에서 먹고, 자고, 일하고, 여행했다. 그 여정은 두 사람의 인생관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물을 채우고 화장실 통을 직접 비워야 하는 불편함에서 인생의 본질적인 것들을 인지하게 된 것 같아요. 얻고 싶고 누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스스로 움직여야 얻을 수 있다는 아주 당연한 진리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 이미 충분히 많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는 데 진짜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현명한 시야를 얻게 됐죠.”

밴 라이프 종료 후에도 이들은 정착 대신 방랑하는 삶을 유지 중이다. 지난 1년간은 제주도를 오가며 생활했고, 지난 10월 한 달 간은 <커플의 소리> 전시를 여는 이화동 복합문화공간 ‘이화루애’에 머물렀다. 현재 김모아가 출연 중인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 촬영이 끝나면 12월 초에는 따뜻한 나라로 떠나 좋아하는 해를 원 없이 쐴 작정이다. 여행을 마치면 곧장 1월에 프랑스 파리에 있는 친구 집으로 떠난다. 사이사이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음악을 만들고 영화도 찍으면서 둘만의 프로젝트도 차곡차곡 진행한다.

“저희는 삶을 굉장히 주체적으로 살고 싶어요. 언제나 내가 가장 중요하고 나를 소중히 여기고 위로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죠.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사는 삶이 저희가 추구하는 인생의 큰 가치예요.” 몽상에서 그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 커플의 체크리스트는 지금도 매일매일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다.

태재
작가 겸 독립출판인. 여러 권의 시집과 에세이를 발표했다. 수영장에 가고 스쿠터로 책방에 가는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잘하는 일은 천천히 하고 못하는 일은 나중에 한다. 내 마음과 내 손으로 일구는 주체적인 삶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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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시인이나 국어선생님을 꿈꿨다는 작가 태재. 그는 글로 먹고사는 다른 직업을 고민하다가 광고를 전공하고 카피라이터를 업으로 삼았다. 스물여섯의 나이에 입사하기 어렵기로 소문난 광고 대기업에 들어가 남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정작 본인은 행복하지 않았다.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생각했던 삶과 전혀 달랐어요. 광고업 자체가 가진 특성이 자기 시간을 주체적으로 가지기 어렵잖아요. 주말에 개인 약속 하나도 내 마음대로 못 잡게 되니까 화가 많이 났죠. 지금 생각해보면 내 삶이 없어졌다는 거에 당황했던 것 같아요.”

주체성을 잃은 자신의 삶에 불행하다 느낀 그는 퇴사를 하고 원하는 대로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회사를 그만뒀을 때 포기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포기한 게 아니라 선택했고, 취소했던 것뿐이에요. 아마 그때 그냥 버텼다면 지금쯤 몸에 병이 났겠죠(웃음).”
주체적인 삶을 회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이 원하는 걸 찾아가기로 마음먹은 그가 시작한 일은 가장 좋아하는 글쓰기였다. <애정놀음> <위로의 데이터> <우리는 꼭 한번 사랑을 합니다> 등 여러 권의 시집과 산문집을 발표했다. 그중 <빈곤했던 여름이 지나고>는 남들과 다른 20대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느낀 감정을 그린 기록이다. ‘모든 것이 별것이 아니지만, 또 별것이 되어버리는 순간이다’라는 그의 문장처럼, 시간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생기자 일상의 매 순간이 다르게 보였다.

“시간이 언제 갔는지 모르겠다는 표현처럼 글을 쓰거나 조카를 본다거나, 조카를 보는 가족들을 본다거나 할 때, 아득해지는 그 찰나에 정말 행복하다고 느껴요.”

요즘은 일주일에 며칠은 스쿠터를 타고 책방에 출근하고 매일 수영장에 들러 수영을 한다. 가끔씩 독립출판물 제작 강의도 연다. 중요하고도 소중한 나, 소중하고도 중요한 내가 되어가는 삶이다. 불행에서 다행인 날이 시작됐다.

곽명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치앙마이>의 저자. 지난 11년간 항공사 영업기획과 디지털 마케팅을 했다. 대책없이 퇴사를 감행, 무턱대고 떠난 치앙마이에서의 한 달 살기가 삶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스스로 자아 탐색 중인 백수라 소개하는 그녀는 제2의 인생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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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8시간 근무, 혹은 야근과 출퇴근에 소모되는 시간까지 합치면 매일 하루 최소 11시간은 일하는 삶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사회적으로 부여되는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졌다. 번아웃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희망퇴직의 찬스를 잡아 대책없이 퇴사했다.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보는 삶을 살아보고자 다짐한 곽명주는 그래서 그길로 따뜻한 날씨와 저렴한 물가에 덜컥 치앙마이로 떠났다. 계획이 없었기에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을 한 달여 보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가치를 깨달았다. 알람이 없이 일어나서 하루를 내 마음대로 쓰는 루틴 자체만으로도 머릿속의 잡념이 사라졌다.
“3~4달쯤 놀았을 때 주변에서 다들 저보고 ‘이제 다 놀았냐?’ ‘다시 취업해야지?’라는 말들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저는 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여러 가지 삶의 모습을 보면서 일 년쯤 쉰다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았어요. 가끔 사람들이 ‘잠깐 쉬고 계시는데’라고 말을 조심스럽게 에둘러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저는 당당하게 ‘네! 놀고 있어요!’라고 말해요.”

소속 없는 백수로 일 년여간 지내면서 자신을 위한 배움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온전히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벌였고 충분히 한가하고 충분히 바쁘게 놀았다. 그사이 독립출판사를 만들고 책을 내고 소셜 플랫폼 <남의 집 프로젝트>에서 홍보 기획 일도 하면서 평소 궁금했던 스타트업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배웠다. 아마도 머지않아 다시 일을 시작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어떤 종결이나 끝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꼭 회사를 그만둬야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중요한 건 회사 밖이냐, 안이냐가 아니에요. 내 안에 있는 길을 들여다봐야 하죠. 내가 원하는 것, 욕망이 뭔지를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중요한 건 나를 돌아보는 휴식의 시기가 필요하다는 것. 그 행복감을 다른 사람들도 느끼길 바래요.”

김민채
책방 ‘취미는 독서’ 오너 겸 프리랜스 출판편집자. 서울에서 출판편집자로 일을 하다가 연고도 없는 부산으로 이동해 ‘취미는 독서’를 창업했다. 그녀가 완성한 건 책방만이 아니다. 0에서 1로 만든 작은 세계이자 온전한 자신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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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입사할 때도 출판은 사양 산업이니 10년 뒤에 과연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때도 ‘내가 내일 당장 교통사고로 죽을 수도 있는 건데, 10년 뒤를 걱정하는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일까?’라는 생각으로 출판계에 뛰어들었다. 김민채는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나오는 ‘나로서는 너무나 길고 충만한 삶을 살고 있었기에 당장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무엇 하나 아쉬울 게 없는 겨울이었다’는 문장처럼, 오늘의 삶이 마지막 날이어도 아쉬울 게 없도록, 오늘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을 하자는 주의로 살아왔다.

“결혼과 함께 부산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새로운 도시에 취업을 해야 할지, 프리랜스 편집자로 생활해야 할지 결심이 서지 않았어요. 노트를 펼치고 고민을 적어봤더니 모든 고민은 ‘내가 원하는 것, 꿈꾸는 것은 무엇인가?’로 가 닿더라구요.”
내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것, 나라는 한 인간이 온전한 브랜드가 되는 것. 노트에 적은 글을 보자 머릿속에 수많은 질문들이 구름 걷히듯 사라졌다. 그리고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실현하는 플랫폼으로 책방 ‘취미는 독서’를 구상했다. 낯선 도시에서 권리금 없고 보증금과 월세가 합리적인 곳을 찾으려니 더욱 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부터 Z까지 창업과 관련한 모든 것을 혼자 해냈다. 돌아보면 단순한 창업이 아닌 온전한 나, 스스로의 자아를 찾는 시간에 가까웠다.

“지금 내가 하는 선택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지금 행한 일이 죽기 직전 바라봤을 때 후회할 일이 될지 잘한 일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어요. 지금 하고 싶은 일 중 가장 가치 있는 일, 해낼 수 있는 일을 향해 걸어갔으면 해요.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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