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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020.01.31

연어의 나라에서 연어를 먹는 경건한 방법

스톡홀름의 연어 그라블락스. 경건한 마음과 함께 춥고 어두운 밤이 무르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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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10월은 어둡고 또 어두웠다. 영국보다도 해가 일찍 져서 오후 4시 언저리만 되면 온 시내에 불이 켜졌다. “겨울에 스웨덴에 오는 분은 별로 없어요. 스웨덴 사람들도 다 외국으로 나가는 걸요.” 스웨덴에 온 지 20년이 넘었다는 중년의 가이드는 앞을 보고 운전하며 말했다. 도로 양옆으로는 눈이 높이 쌓여 있었다. 교외 쇼핑몰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공항에서 1시간여를 달려 스톡홀름 시내에 들어섰다. 북유럽에 널려 있는 석조 건물들이 음울한 그림자를 비추며 서 있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누웠다. 창밖으로 펼쳐진 서늘한 풍경을 보다 커튼을 닫았다. 다음 날 스톡홀름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햇살이 눈 위에 반짝였고 금발을 한 사람들이 시내를 걸어다녔다. 불길했던 고성(古城)은 장엄하고 경건한 몸집을 드러냈다. 우리의 목적지는 영국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스톡홀름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라고 했던 재래시장 외스테르말름 살루홀( stermalms Saluhall)이었다. 1880년대에 세워진 이 시장은 옛날 경성제국 시절에나 볼 법한 흑갈색 나무 상점에 과일과 치즈, 고기, 생선이 가득 쌓여 있었다. 파란 눈을 가진 스톡홀름 사람들은 사과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보며 신중하게 물건을 골랐다.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우리 일행은 시장 한편 식당에 앉아 북국(北國)의 점심을 기다렸다. 사실 북유럽 식문화는 나라별로 구별하기 어렵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등은 공유하는 역사만큼이나 비슷한 식습관과 음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연어가 있다. 지금은 콜드체인과 양식이 발달돼 연어를 사시사철 생으로 먹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못했다. 한철 잡은 연어를 한국의 자반고등어마냥 소금과 설탕, 레몬, 보드카, 허브 딜에 절여 오래 두고 먹었다. 이런 조리법이 정리된 18세기 이전에는 아예 소금과 함께 땅에 묻어 발효시켰다. 그때 구덩이를 그라브(Grav)라고 했고, 이 이름을 따서 후에 북유럽식으로 절인 연어를 그라블락스(Gravlax)라고 부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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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식당에서 펼친 메뉴판에도 어김없이 그라블락스가 있었다. 빵과 미트볼과 함께 그라블락스를 시켰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볼 수 있는 장식적이고 어떤 면에서 예술적이기까지 했던 식문화는 이 차가운 나라엔 없었다. 대신 사람들은 정확하고 신중하게 움직였다. 먹는 행위도 마찬가지였다. 음식을 즐긴다기보다는 영양분을 효율적으로 섭취하는 듯이 보였다. 베리 소스와 함께 나온 미지근한 미트볼은 이탈리아에서 먹었던 것과는 아예 다른 음식 같았다. 흥청망청 입안에 가득 쑤셔 넣고 우적우적 씹고 싶었던 이탈리아와 달리 스톡홀름의 미트볼을 먹을 때는 운동 후 단백질 보충제를 먹는 듯 진지한 기분까지 들었다. 연어 그라블락스는 절인 음식 특유의 뻣뻣한 질감을 지니고 있었다. 소금에 절여 수분이 빠져나가, 연어를 떠올리면 연상되는 흐물거리는 부드러운 질감은 어디에도 없었다. 여기에 레몬, 딜과 같은 방향성 허브와 설탕이 섞여 단짠도 아닌 달고 짜고 신 무엇이었다. 기름기도 쏙 빠져서 입안에 느끼한 맛이 전혀 없었다. 연어의 물컹거리고 미끈거리는 질감과 기름기가 만들어내는 묘한 방탕함, 야릇함은 사라지고 건강하고 바른 핵심만 남아 있었다. 이 그라블락스를 빵에 넣어 씹고 딜과 레몬으로 만든 소스, 혹은 치즈 등과 함께 곁들여 먹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라블락스의 묘한 맛이 이해가 됐다. 길고 차가운 겨울날, 이곳 사람들은 절인 연어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으리라. 낮게 켜놓은 등불, 털이 길고 몸집이 큰 개, 너르게 펼쳐진 흰 설원과 사나운 바다. 스스로를 다잡으며 멀리 내다보고 차분히 계획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에 걸맞은 음식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거리로 나왔을 때 마치 영화 속 엘프와 같은 사람들이 내 앞을 지나다녔다. 그들이 먹고 사는 음식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되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꽁꽁 언도로를 사뿐사뿐 가볍게 걸었다. 짧게 뜬 태양을 즐기는 초식동물 같았다. 닥쳐올 어두운 밤을 잊은 맑고 푸른 눈동자가 햇살에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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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MADE GRAVLAX
재료
연어 ½마리, 굵은소금 1컵, 황설탕 2컵, 보드카 ½컵, 으깬 통후추·레몬·딜 약간씩

조리법
1 소금과 설탕, 후추를 연어에 구석구석 바른 뒤 보드카를 뿌린다.
2 레몬 제스트(레몬을 강판에 긁어 나온 껍질)와 다진 딜을 연어 한쪽 면에 두껍게 바른다.
3 ①, ② 과정을 거친 연어를 랩으로 단단하게 싼 뒤 냉장고에 최소 사흘 정도 넣어둔다(숙성이 될수록 연어의 살이 투명하게 변하는 모습이 눈에 띌 거다).
4 어느 정도 숙성이 되면 레몬 제스트와 딜, 껍질을 벗겨낸 뒤 얇게 썰어 먹는다.
EXPERT PROFILE : 정동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유통회사에 다니다 훌쩍 영국으로 떠나 셰프의 길에 들어섰다. 현재는 신세계그룹 F&B에서 먹고 마시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동시에 유쾌하고 맛있는 글도 쓴다.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와 <그릇을 비우고 나면 많은 것이 그리워졌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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