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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020.02.15

공간과 잡지의 수상한 조우

도시에 새로운 방정식이 출현했다. 카페와 책방, 갤러리와 호텔이 뒤섞이는 곱하기와 더하기의 수상한 방정식. 이건 큐레이션의 셈이기도 하고, 잡지를 닮아가는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적 변화이도 하다. 잡지가, 가게가 서로를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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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서 출발한 ‘어쩌다 산책’, 대학로
‘어쩌다 가게’에 들어가면 작은 에세이의 품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인사이트, 크리에이티브, 콘셉트. 시대를 떠들썩하게 하는 말들은 항상 내일을 이야기하지만 그 한복판 ‘어쩌다 가게’는 벌써 5년이 넘는 세월을 살고 있다. 동교동에서 시작된 함께 사는 삶의 실험은 망원, 합정 그리고 왕십리와 대학로까지 번져갔다. 디지털이 어제를 돌아볼 때, 그건 놓치고 있던 내일의 순간임을 어쩌다 가게를 걸으며 ‘어쩌다’ 생각한다. 소비보다 삶, 필연보다 우연.
“어쩌다 동교를 오픈하고, 자연스레 ‘동네’란 키워드를 중심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동네 안에는 사는 공간, 일하는 공간, 휴식을 위한 공간이 있고, 그렇게 어쩌다 집, 가게, 책방, 갤러리, 산책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어쩌다 프로젝트'의 안구서 대표는 지금의 ‘어쩌다’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지만 처음부터 그런 그림이 있었던 건 아니다. ‘어쩌다’란 말이 살며시 예감케 하듯 삶의 알지 못하는 사소한 우연들이, 어쩌면 그곳에 ‘어쩌다’ 쌓여왔다. 일견에선 새로운 공생의 골목으로, 혹은 또 하나의 새로운 공간 지형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다시 교차하는 지금, 도시의 커뮤니티는 ‘어쩌다’, 딱 그 정도의 밀도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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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NOTFREE, 어쩌면 제목만으로 충분하다, 프리랜서 매거진.
2018년 12월 25일 1호, 2019년 12월 3일 2호 발행. 크게 보면 연간 한 회 발행되는 오프라인 매거진이지만, 이 프리한 날짜엔 절실한 리듬이 묻어 있다. 프리랜서들의, 프리랜서를 위한 콘텐츠로 한 권을 완성해가는 이다혜 편집장의 잡지 <FREENOTFREE>는 프리랜서란 말의 FREE가 한국 사회에서 갖는 아이러니를 여실히 느끼게 한다. 타이틀 속 같지만 다른 단어 FREE에, 먹고살아가기 위한, 지속이 결여된 지속 가능성의 시대는 마음이 뜨끔하다. “프리랜서에겐 시간, 공간의 자유가 존재한다고 하지만 생계를 위해 일하는 관점에서 오히려 자유롭지 못한 선택에 놓일 때가 많아요.” 시작은 콘텐츠 플랫폼 브런치에 개인적으로 적던 글의 url이다. 지금은 ‘그래도 프리랜서’란 모임으로 서로를 공유하고, ‘지면으로 만나는 느슨한 프리랜서 연대’를 지향한다. 그리고 그런 소박한 내일이 어쩌면 지금 가장 필요하다. 그저 지나치고 마는 숱한 스크린 속 url의 몇 글자. 때로는 그곳에 타인의 오늘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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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절에 잡지, 잡지, 잡지밖에 없는 종이 잡지 클럽.
잡지는 한 달의 시간을 산다. 때로는 1주, 가끔은 계절별로 새로운 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시절은 터무니없이 많은 날이 흘러, 매달 20일 즈음 서점에서 새 잡지를 둘러보는 일상은 점점 실종되어간다. 합정동 뒷골목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으면 고작 20평 남짓에 구비된 잡지는 무려 400여 종이다. 발행의 주기가 점점 희미해지는 시절에 그 리듬은 어쩌면 자리를 옮겨, 이곳은 데이팩, 정기 구독제로 운영된다. 하루 5000원, 6개월 4만원. “국내에선 이런 모델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해외엔 꽤 있어요. 잘 될지 확신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최대한 부담을 줄이면서 해보자 생각했죠.” 마음이 맞는 지인 둘과 함께 지난 겨울 문을 연 종이 잡지 클럽의 김민성 대표는 잡지와 별 연이 없던 사람이다. “잡지를 좋아했지만 은행에서 일을 했어요. 동생이 도쿄에 살고, 저는 미국에 11년 정도 살아서 잡지에 관한 정보를 좀 넓게 접했던 편이었죠.”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택배가 하나 도착했고, 또 한 권의 잡지가 들어왔다. “이쪽 업계에 대해 아는 게 없어 잡지 편집장님들을 다 만나고 다녔어요. 그런데 하시는 말들이 모두 ‘하지 말아라’였죠(웃음).” 지금은 구독이 하나의 흐름이라 하지만, 사실 변화는 외부에서 잡지를 바라보는, 개인의 아주 사소한 오늘에서 시작되는지 모르겠다. 만드는 사람, 발신하는 측에서 보는 사람, 수신하는 측으로 어쩌면, 시간의 리듬이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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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3년을 들여다보는 브로드컬리.
서울의 3년 이하 빵집들, 서점들, 퇴사자의 가게들. 3년이란 숫자가 이렇게 치명적으로 들려온 적은 없다. 한 집 건너 치킨집이던 시절이 지나고, 줄줄이 카페가 문을 열던 날을 거쳐, 조퇴계 편집장의 잡지 <브로드컬리>는 한국의 3년을 묻는다. 4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몸체에 파랑, 빨강 강렬한 컬러로 도색된 표지가 볼 때마다 언제 잊힐지 모를 3년의 역사가 아차 싶다. 조퇴계 편집장은 잡지라고는 그저 평범한 수준의 독자였고 본래 벤처 캐피털, 사모펀드 같은, 이쪽에선 전혀 모르는 동네에 살던 사람이다. “금융 쪽에서는 부정적 톤의 질문, 건조한 분석이 당연한 일이에요. 흐름을 잘 만났다 생각해요.” 가령 ‘서울의 3년 이하 퇴사자의 가게들’을 다룬 3호 중 ‘돈은 대략 얼마 정도 모아두고 퇴사했나’, 창간호였던 ‘3년 이하 빵집들’의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10년 넘게 잡지를 만들면서 엄두도 내지 못했던 질문들을 그는 과감하게 던지고 기록한다. “저는 뭐가 그렇게 힘든지, 왜 비싸게 파는지 등 부정적 의문을 통해 보다 입체적이고 깊이 있게 이해하고 애정을 가질 수 있게 하고 싶다 생각해요.” 2016년 2월에 창간해 이제 5년째, 3년 이후 서울의 잡지는 이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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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좀 한다는 가게의 돈카츠 ‘콘반’
새로운 카페가 오픈하고, 종전에 보지 못한 콘셉트는 힙플레이스가 되고, 그렇게 인스타그램의 좋아요와 해시태그가 늘어가지만, 어쩌면 결국 남는 건 사람과 사람이다. 장안동, 굳이 쉽게 설명하자면 동대문 근처이기는 하지만 듀펠센터가 위치한 곳은 참 가기가 수고스러운 골목이다. 스펙테이터의 안태옥 실장이 구상하고 운영해 그 옷을 구경하러 가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만에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다면, 사이즈가 품절이라면, 경우에 따라 2시간이 넘는 길은 헛걸음이 되고 만다. “저희는 옷이 중심이기는 해도 1층에 식당이 있고, 카페가 있고, 작은 서점도 있어요. 옷을 찾지 못하더라도 커피 한잔 마시고 돌아갈 수 있게 갖춰진 구색이라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말을 걸어온 남자는 대학교 시절부터 안태옥 실장의 옷을 좋아하던 스펙테이터의 팬이었고, 지금은 듀펠센터의 3층 전반을 아우르는 매니저 역할을 담당한다. 듀펠센터는 모두 지상 3층, 스시집이 마련된 지하 1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3층엔3개의 편집숍, 바시몽트, 네이비마켓, 경리단 시절에서 이전한 안태옥 실장의 네버 그린 스토어가 입점되어 있다. 초기엔 동네 목욕탕을 리뉴얼했다는 사실로 주목을 받았다. 1층 돈카츠 식당 ‘콘반’엔 욕탕 타일의 오래된 뉘앙스의 무드가, 패션 칼럼니스트 홍석우가 단장한 책방 ‘산책’이, 2층엔 욕탕이었던 공간의 탁 트인 넓이를 살려 몇몇 브랜드의 작은 숍 아닌 숍이 보이지 않는 경계로 함께하고 있다. 프로토타입이란 단위를 바탕으로 챕터를 하나씩 완성해가던 안태옥의 옷은 지난 겨울 하나의 건물을 쌓았고, 옷, 돈카츠, 커피 서로 다른 장르의 공간에서 서로 닮은 무드가 느껴지는 건,그곳에 자리한 사람과 사람의 이어짐 때문일지 모르겠다. 가장 작은 백화점에서 목욕탕의 체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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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서울에서 가장 많은 독립 서적이 태어나는 스토리지 북앤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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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암동 초판 서점의 콘셉트는 아웃도어, 책이 바라보는 클라이밍
해방촌의 ‘스토리지 북 앤 필름’을 운영하는 강영규는 금융권에 종사하다 책방을 열었다. “필름카메라를 좋아했어요. 그러다 사진집을 냈고, 300부 정도 찍어 독립 책방에 출판하면서, 이런 곳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어요.” 그리고 그는 지금 벌써 책방 주인 8년차를 살고 있다. “회사 생활하며 천편일률적 삶을 살다 내가 스스로 무언가 해볼 수 있다는 것, 그걸 재미있게 가치 있게 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스토리지 북 앤 필름’에선 책을 만들고 싶은 이들을 위한 도움 성격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13년 성산동에 문을 열었던 또 하나의 독립서점 ‘초판 서점’을 2018년 겨울 5분 거리 언덕길에 비주얼 중의 갤러리 겸 서점 공간으로 이전 오픈했다. 강영규 대표는 “독립 서적의 다양성을 최대한 보여주는 곳이었으면 해요”라고 이야기한다. 왜인지 충만한 작은 우주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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