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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020.03.25

김종관의 언어

김종관의 첫 상업 장편영화 <조제>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새로운 언어를 입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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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란 이름으로 한 걸음. 북촌과 서촌, 남산의 언덕길을 걸어 또 한 걸음의 단편영화. 김종관의 영화엔 시간의 품을 들여다보는 산책의 느림이 있다. 그를 널리 알린 <폴라로이드 작동법>, 단 6분 남짓의 작은 영화를 비롯 수십 편의 단편영화엔 삶의 작은 순간을 담아내는 깊이가 매번 생생했다. 영화를 시작하고 시간은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장편영화는 네 편 남짓이다. 말 그대로 러닝 타임의 장단을 의미하는 구분일 뿐이지만, 테이블 하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더 테이블>, 지난 전주영화제에서 공개된, 한 남자가 만난 여러 명의 사람들과의 대화로 구성되었다는 <아무도 없는 곳>, 그 두 편의 장편을 떠올리면 그에게 단편영화는 세상을 담아내는 단위 혹은 기호다. 지금 그곳엔 오래전 국내에 개봉했던 이누도 잇신의 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다시 태어난다. 공교롭게 그 영화가 만들어진 건 <폴라로이드 작동법>이 완성되던 2004년, 그 무렵이다. 화제는 되었어도 이누도 잇신 영화가 불러들인 국내 관객수는 고작 7만여 명. 그런 작은, 하지만 그 이상의 울림이 김종관의 영화와 닮아 있다. 이미 흘러간 시간을 바라보는 꿈속의 밤과 같은,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찰나의 이상한 멜랑콜리 같은, 그런 마법의 순간이 그의 영화에 진하게 묻어난다. 조금 더 올라가면 영화의 원작이 되었던 타나베 세이코의 동명 소설은 1984년 작품이고, 10년, 20년 남짓을 단위로 찾아오는 시간의 우연이 지금 운명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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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난 1월 촬영을 끝마쳤다고 들었다. 원작을 가진 첫 작품, 리메이크도 처음인데 어떤 촬영이었나. 4개월 정도 촬영을 했어요. 50회차 정도 찍었고, 이전에 독립 장편 네 개를 했는데, 그 넷을 다 합쳐도 이번 <조제>보다 차수가 적더라고요(웃음). <조제>가 중저예산 작품이기는 해도, 지금까지 했던 영화들을 모두 합친 회차들보다 많으니까, 그만큼 여유가 있었어요. 작은 독립영화라 해도 처음 시작하는 작품이라면 회차가 많아질 수 있거든요. 아무래도 독립영화 작업이란 게 상업영화에 비해 개런티를 많이 주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그래서 항상 적은 회차와의 싸움이에요. 그래서 머리를 써서 공간을 제한하거나 적은 회차로 한 편의 영화가 마무리될 수 있는 궁리를 해요.
Q 아마도 상업영화로는 처음인 것 같다. 어떤 차이들이 있었나. 하나의 아이디어로 재미있게, 임팩트 있게 만들어가는 영화도 있어요. 하지만 영화 작업이란 게 결국 디테일을 만들어 세부적인 것들을 쌓아올리는 거잖아요. 제 영화 공정도 작은 이야기를 통해 만드는 쪽이고, 그런 걸 독립영화에서 할 때는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공간을 줄이고, 연출자 스스로 준비가 많이 되어 있어야 해요. 쓸데없는 장면은 최대한 찍지 않고, 테이크도 많이 가지 않고, 정해진 한도 내에서 해야 하는 압박 같은 게 있었죠.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점에서 제가 갈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아졌다는 느낌. 납주머니 달고 뛰다 떼고 뛰는 것 같단 느낌이 있었어요(웃음).
Q 원작이 많은 팬을 가진 작품이다. 제안을 받은 기획인가. 기획은 제가 했어요. 원작을 워낙 좋아했고, 영화가 가진 것 안에 제가 하고 싶은 게 많이 있었어요. 기본적으로 좋은 멜로의 틀을 갖고 있고, 그 안에서 관계를 다루는 섬세함이 있잖아요. 메시지도 분명하고 정서적으로 좋아하는 것들이 있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드러나는 선한 면과 그렇지 않은 면이랄지, 아이러니한 것들. 휴머니즘이 많은 스토리 라인이고, 제가 이전에 시도했던 영화들도 대부분 그런 작품들이었어요.
Q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2004년 국내 개봉했고, 김종관 초기 대표작인 <폴라로이드 작동법> 역시 2004년 작품이다. 별거 아닌 우연일지 모르지만, 시간이 한 바퀴 돌아 다시 만났다는 느낌이 든다. 우연이라기엔 용기가 많이 필요했죠. 처음 이누도 잇신 감독 영화 봤을 때, 나도 열심히 영화 만들어 이런 영화를 한 번 만들어봐야 할 텐데라고 생각했어요. 이후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고요. 이전에 시나리오 썼던 것도 비슷한 정서감의 영화였는데, 잘 안 되고, 안 되고, 그러다 결국 리메이크 형태로 이야기를 하게 됐단 생각이에요. 리메이크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 길었던 것 같아요. 그만큼 부담을 안고 가는 거니까요.
Q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모두 세 번 보았는데, 이 영화는 결국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의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감정을 잃어버린, 하나의 시절을 상실한 사람의 이야기란 점이 김종관 영화와 포개지는 느낌이 있었다. 원작의 어떤 부분을 가장 가져오고 싶다고 느꼈나. 제가 받아들인 게 의도와 맞다면, 사람이 살아가고 성장하고 변화하는 20대의 시기, 그 시간을 눈 뜨고 어떻게 겪어나가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보았어요. 기본적으로는 서로를 사랑하는 연애 이야기지만, 결국 멜로 영화는 타인을 이해하는 여정에서 자신을 여행하는 과정의 이야기라 생각해요. 그런 맥락에서 남자주인공은 인간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라 생각했고, 여자 캐릭터는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경멸하는 사람이 타인을 만나 변화하고 끝에 이르러선 본인을 더욱 좋아하게 되는 이야기라 보았어요. 원작과는 다른 플로우를 타고 흐르면서 결과적으로 같은 감정,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Q 원작에선 쿠루리의 음악이 영화의 정서를 만든 부분도 크다고 느낀다. 나래 음악 감독과 같이 작업해요. <페르소나>, <더 테이블>, 그리고 <하코다테에서 안녕>, <메모리즈>도 같이 했고. 저는 60, 70년대 향수가 있는 클래식한 멜로를 하고 싶어서, 음악적으로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하고 같이 고민해요. 요즘 복고나 레트로가 아닌, 클래식한 영화엔 음악의 힘이 있잖아요. 그런 걸 가져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무래도 대중영화니까 어려운 화법은 쓰지 않겠지만요.
Q 방금 이야기했든, 대중영화, 김종관 영화 중에선 아마 가장 상업영화인데, 타협이라 느꼈던 건 없나. 아직은 모르겠어요. 이걸 좀 더 준비했다면, 좀더 여력이 있어 고민을 했다면, 그런 것들은 있는데, 프로덕션 과정에서 타협점은 없었다 생각해요. 이런 진행 방향이 있고 그에 대해 누군가 걱정을 한다면, 그 안에서 제가 즐길 수 있는 어떤 부분으로 진행한 것은 있지만, 어쨌든 보편성을 지녀야 하잖아요. 이 정도 예산이 들었다면 그 이상의 관객은 봐줘야 하는 거고, 그건 제가 노력을 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고민들은 있었지만 그게 타협 같지는 않아요. 굉장히 좋게 작업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Q 보통 단편영화는 장편보다 짧은 30~40분까지의 영화를 이야기하지만, 이제 와 생각하면 김종관의 영화들을 만드는 하나의 영화적 언어라는 느낌이 든다. 갖춰진 줄거리의 영화라기보다 장면 하나하나가 농밀한 내면을 드러내며 보이지 않는 걸 보이게 하는 영화랄까. 그런 점에서 <조제>가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조제>도 제가 진행하는 어떤 과정 중 일부예요. 상업영화이기 때문에 좀더 많은 관객에게 보일 거란 기대 같은 건 있지만, 저한테 아주 큰 포지션의 터닝 포인트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외적으로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페르소나>나 <하코다테에서 안녕>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변화를 가져가는 지점이고, 이번 영화를 했다고 제가 작은 작업을 하지 않을 건 아니기 때문에 연출자로서 긴장은 있어도 크게 달리 무언가가 있다고 느끼지는 않아요. 다만, 이번 영화는 곳곳의 소도시를 많이 돌았고, 제가 살던 동네, 오래전의 저, 제 자신을 많이 들여다본 작업이었다고 느껴요.
자세한 인터뷰는 <싱글즈 3월호>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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