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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020.03.26

독일 빵을 샀다

그 빵엔 이상하게 빵을 하나 더 고르는 날의 리듬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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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던 시절, 빵은 가장 편하고 곤란했다. 입이 하나면 기껏해야 2개, 갓 구운 빵을 최고로 친다면 3개가 넘어가면 낭비임이 틀림없는데 이상하게 빵을 하나 더 집어들었다. 그렇게 봉투 가득 비집고 나온 빵을 조심스레 들고 돌아가는 일이 많았다. 식빵은 두고두고 토스트를 하거나 잼을 발라, 먹지 못할 것 같으면 냉동시켜 꺼낸 뒤 레인지에 30초, 조금 일찍 일어나는 행운 같은 날엔 미리 해동을 시켜 거의 오븐에서 갓 꺼낸 듯한 빵을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빵은 휴지통에 버려진다. 그렇게 저렇게 먹지 못한 미완의 빵들이 기억 속에 수두룩하다. 어디서도 설명하지 못하는 이상한 낭비의 빵들. 빵을 좋아한다 생각하며 십수 년을 살았지만, 돌아보면 케이크를 찾아 동네를 걷던 날들의 수상한 오해였다. 빵은 어김없이 조금 이상한 자리에 나와 함께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허기진 기분에 문득 오래전 살던 동네 코너길의 독일 빵집이 떠올랐다. 삶은 돌고 돈다는데 보이지 않는 주기의 흐름이었는지, 문득 찾아온 예고된 어제와의 재회였는지 예쁜 이름 두 개를 나란히 쓰는 그곳의 스콘은 빈자리를 품은 듯 이상하게 가벼웠다. B 토스터는 죽은 식빵도 살려낸다는데, 그 오후의 조금은 생소한 날들이 어쩌면 빵을 품는 설렘인지 모르겠다. 눈이 오지 않은 겨울, 어둑한 골목길을 사박사박 걸었다.
예전에 경리단길 초입에 독일 빵집이 있었다. 최신 유행의, 지금이라면 해시태그를 타고 뻗어갔을 시크하고 세련된 어감의 ‘독일 빵’. 그 빵은 요즘, 세월이 뭐라고, 사람이 뭐라고, 잘 보이지 않는다. 프랑스 빵이든 이태리 빵이든 한국에 오면 한국 빵이 된다고, 먹고살기 위해 살던 시절에 타국의 식생활을 받아들일 도시는 사실 별로 없다. 밥이 아닌 빵의 자리에서, 식탁이 아닌 카페 테이블이나 어딘가의 파티 자리에서 빵은 조금 일상이 아니고, 어김없이 이곳의 일상이다. 그런 도시에서 압구정 ‘악소’는 독일 빵을 판다. 2006년 무렵 한남동 골목에서 시작해 11년, 두 해 전 압구정 아파트 상가로 이사해 맞이하는 세 번째 겨울이다. 발음도 어려운 브뢰헨, 조금씩 재료에 차이를 두어 여섯 종류의 브뢰헨과 우리가 맥주 안주로 찾는 브레첼, 딱 7종을 만들고, 아침 8시 30분에 시작해 해가 지는 6시 무렵이면 하루가 끝이 난다. 그곳의 주인 파티시에 허상회는 본래 독일에서 건축을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건축이란 게 밤을 새는 일이 많고, 원래 음식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탈리안이랄지, 그리스 음식이랄지 말이죠. 도르트문트에 살았는데 독일 빵이 궁금해졌고, 재미 삼아 아르바이트를 해보려고 하다 거절도 당하고 처음엔 오기도 발동해 베커라이(베이커리의 독일말)에서 일을 하게 됐어요”라고 얘기했다. ‘악소’는 2018년 TV 프로그램 <수요미식회>에 등장하며 화제가 됐고, 그 영향은 한남동의 악소를 지금의 압구정 빵집으로 이사하게 한 이유기도 하지만, 그곳엔 변하지 않는, 그가 한 시절을 보내며 맛을 보았던 독일 중서부 도르트문트 독일 빵의 맛을 지켜가는 변하지 않는 시간이 있다. “방송 나가면 전화가 많이 와요. 한남동 가게가 오기 쉬운 곳은 아니어서 처음 아신 분들이 문의 전화를 많이 하시고, 그러면 장사하기가 너무 힘들었죠. 그리고 11년 같은 자리에서 있으며 지루함도 있었고요. 압구정 여기는 찾기 쉬우니까요.” 그 소박한 다짐이 이상하게 애절했다.
‘악소’에서 주문은 1번부터 7번으로 이뤄진다. 인터뷰를 하는 중 털모자를 쓰고 온 여성은 ‘1번과 3번 소스는 빼고요’라 주문했고, 주문이 오가는 사이 오해를 방지하기 위함이지만, 그 별것 아닌 대화에 그곳만의 일상이 그려진다. “독일 빵의 특징을 떠나서, 빵을 주식을 하는 나라에서 빵은 밥이에요. 별것 아닌 차이 같지만 사실 어마어마하게 다른 이야기예요. 한국의 식당에서 밥만 팔지 않잖아요. 반찬까지 같이 제공하는 것처럼 독일에서도 빵을 가져가 치즈, 햄, 어울리는 조합을 하고 식사로 먹어요. 호밀 함량이 얼마냐고 물으시는 분도 계신데 호밀 100%는 엄밀히 빵이란 정의에 들어가지 못해요. 밀가루가 포함되어야 글루텐이 형성되고, 밀가루, 호밀, 잡곡 이렇게 모여서 빵이 되는 거죠.” 마치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것처럼, ‘악소’ 매장은 고작 서너 개의 테이블이 놓인 작은 가게였다. “독일 빵 맛을 보여주는 게 저의 목표예요. 어떤 분들은 독일산 치즈, 햄이 비쌀까봐 빵만 가져가서 뜯어 드시거나, 집에 있는 잼 발라서 드시는데, 그러면 식빵에 잼 발라 먹는 게 나아요. 저는 독일 빵을, 가장 맛있는 독일 빵을, 있는 그대로 맛과 모양을 변형하지 않고 보여주는 게 역할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다소 열변을 토로했다. 그곳의 샌드위치는 햄, 치즈, 에그 다 넣고도 5000원을 넘지 않는다. 그의 빵에 대한 열정은 상당했고, 20년 가까이 독일 빵을 구우면서 여전히 호밀의 함량을 따지고, 비건이 유행과 트렌드로 묻혀가는 도시에서 그저 작은 울림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그의 누나가 직접 만들어준 노멀 브레드에 햄, 치즈, 달걀 그렇게 들어간 샌드위치에선 분명 이곳엔 보이지 않는 어쩌면 ‘서머타임’ 같은 시간이 느껴졌다. “한국에서 서머타임 이야기를 하잖아요. 하지만 사실 그건 저녁보다 아침을 메인으로 즐기는 유럽 생활 패턴에 기반한 거거든요. 그들은 저녁을 안 먹는 일도 많고, 일이 끝나면 하이킹을 가고, 하이디 복장을 한 여자가 브레첼을 들고 다니면 그거 하나 사서 뜯어 먹어요. 맥주 안주가 아닌 거죠.” 빵을 하나 더 산다는 것, 버려질지 모를 빵 한 덩어리를 들고 집에 돌아온다는 건 가질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애탄 바람일지 모르고, 결코 발음할 수 없는 독일 빵을 다시 한번 서툴게 주문하는 일일지 모른다. 독일 빵에선 메트로폴리탄에서 꿈꿔보는 서머타임 같은 여름의 냄새가 났다.
#빵 #악소 #독일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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