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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020.03.03

인맥보다 네트워킹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사랑이라 했던가. 지금은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의 연대가 힘을 발휘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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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치면 미친다
페이스북으로 시작해 취준생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스타트업으로 성장한 회사가 있다. 이름부터 정직하고 직관적인 ‘여행에 미치다’. 시작은 자유 여행을 못 가본 26살 청년 조진기가 2014년 다양한 사람들의 여행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만든 페이스북 커뮤니티였다. 지금은 인스타그램 팔로워만 1100만 명을 거느린 국내 최대 여행 콘텐츠 채널이다. 20대가 여행에 미치다에 열광하는 이유는 여행 상품을 판매하거나 숙소를 중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행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모두의 콘텐츠인 만큼 여행에 관한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회사가 점점 커지면서 지금은 여행에 미치다를 통해 직업이 생기는 사람도 늘고 있다. 퇴사하고 8개월간 여동생과 세계 여행을 떠난 한다솜은 책 한 권과 여행에 미치다 덕분에 여행작가 반열에 올랐다. 프리랜서 여행작가나 여행 영상을 제작하는 감독까지 실제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늘수록 그들은 자신들의 콘텐츠가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여행자의 밤 이벤트에는 여행에 미치다를 통해 초대 받은 여행자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각기 다양한 대륙의 전문가들이 참석해 서로의 여행 팁과 후기를 나눈다. 그들의 대화에서 다음 여행지가 정해지기도 한다. 생각보다 꽤 즉흥적으로. 최근에는 제주특별자치도관광협회와 연계해 제주를 색다르게 여행하는 법을 여행 인플루언서와 함께 소개하기도 했다. 초대 받은 인플루언서의 이름으로 귤나무를 선물하고, 우리가 몰랐던 제주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굉장히 수고스럽고 귀찮지만 막상 떠나면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감정을 선물하는 여행, 복작거리면서 온라인에서 수다 떨던 모임이 오프라인까지 그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좋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행에 제대로 미친 사람들의 활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 나만 아는 이야기를 오픈한다
많은 독립서점이 오픈하고, 여러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 문을 닫는다. 이제는 주인의 취향의 맞게 큐레이션한 책들을 모아놓은 것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큐레이션에도 에지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생겨난 서점이 하나의 콘텐츠만을 다루는 전문 독립서점들. 사진책방 고래, 여행책방 사이에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특히 여행책방 사이에는 연남동의 동네책방이다. 여행 이야기를 나누고, 여행작가와 만남도 가진다. 사이에에서 진행하는 모임은 여행그림지도 만들기, 엉덩이로 쓰는 작심 5주 여행 글쓰기, 여행작가와 도시 탐독 소모임 등이 있다. 고정적인 성격의 모임이 대부분이고, 필요에 따라 일회성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여행책방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여행 자체를 기획하고 주선하기도 한다. 올해 5월 예정인 여행은 ‘호찌민 쌀국수 여행’이다. 베트남 전문가와 함께 베트남의 미식을 경험할 수 있는, 철저히 미식에 초점을 맞춘 여행이다. 여행작가와의 소모임도 많은 사람이 흥미를 가지는 대도시보다는 실질적인 정보가 부족한 나라 혹은 도시 위주로 진행된다. 친구들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조지아라는 나라에 가고 싶어졌다. 이럴 때 사이에에서 조지아 전문가가 주축이 된 모임이 열린다. 참석 인원도 단 10명.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참석했더니 구글에도 나오지 않는 살아 있는 정보를 얻었고, 함께 여행을 떠날 동행도 구할 수 있었다. 너무 잘 알아서 생기는 친구 간의 트러블 없이 적당한 거리감을 가지고 동행과 여행하다 보면 그 도시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 호치민 쌀국수 여행도 그렇다. 여행지에서 중요한 것이 미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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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획이 뭉쳐야 산다
예전엔 골목을 떠올리면 같은 음식을 판매하는 타운이 떠올랐다. 장충동 족발 골목, 신당동 떡볶이 거리 등이 그것이다.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여기저기서 호객 행위가 이어지고, 애초에 계획한 식당까지 가지 못하고 간혹 호객 행위에 붙잡혀 식당에 들어가기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요즘의 골목 개념은 많이 달라졌다. ‘경리단길’로 시작해 ‘망리단길’ ‘송리단길’이 생겼고, 서울을 넘어 전주에는 객사 주변의 ‘객리단길’, 부산 해운대 인근의 ‘해리단길’까지 그야말로 길의 전성시대다. 지금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골목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외지고, 약간은 무섭기까지 했던 문래동은 예술가들의 마을이 됐다. 각기 다른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지만 서울 하늘 아래에서 공간을 셰어하고, 예술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성장한다. 연극 무대에 오래 섰던 배우들이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무명 시절 자신을 믿어줬던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듯 서로 보잘것없다고 느끼는 순간에 만난 비슷한 맥락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큰 의지가 된다. 이들이 개인뿐 아니라 모두 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할 때 동네 상권은 살아나고, 영세한 예술가를 찾아오는 팬들이 늘어난다. 유리공예, 목공예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컬래버레이션 작품을 내놓기도 하고, 팝업 전시도 함께 기획하면서 도시 안에서 상생을 꿈꾼다. 살기 위해 정착한 골목에서 친구이자 네트워크의 중심축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4 연대하면 문화가 바뀐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류준열이 연기한 재하는 도시에서 회사를 다니다 부모님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우며 작은 과수원을 운영한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살아본 그가 선택한 것은 결국 귀향이었다. 김태리가 연기한 혜원 역시 마찬가지다. 농촌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니다 서울의 대학에 진학하고, 임용고시 역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준비한다. 그러다 “배고파서 왔어”라는 말을 하며 허기를 달래기 위해 고향집을 찾는다. 고향에서 겨울, 봄, 여름, 가을과 다시 겨울을 보내고 서울로 올라간다. 아예 고향으로 돌아오기 위한 정리를 위해. 농촌으로 향하는 청년들의 인구가 늘고 있다. 도시보다 더한 텃세에 의외로 이주가 어렵다는 각종 나쁜 후기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삶에 질려 초록을 찾아 떠나는 청년층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청년회장의 나이가 최소 환갑이었던 시기에서 벗어나 진짜 젊은 세대가 농촌을 이끌어가는 지역도 생겨났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충남 괴산. 비옥한 토양과 서울과의 인접성을 장점으로 괴산을 찾는 귀농 인구가 늘고 있다. 최근에는 괴산 지역의 청년 농부들이 모여 농업법인회사 ‘뭐하농’을 설립했다. 한가하지만 심심하기도 한 시골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4개의 농장, 6명의 농부들이 힘을 합쳤다. 농업법인회사를 설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문화를 함께 만들 공간도 준비 중이다. 올해 6월 오픈 예정인 이 공간에서는 월간 파티와 클래스, 생태교실 등 지역문화 발전을 위한 이벤트도 진행한다. 단순히 적적함을 없애보고자 만든 놀이공간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발전과 농업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공간인 셈이다. 좋은 자연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문화적인 면에서는 혜택을 받지 못했던 농촌 아이들이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이들이 할 일이다. 상황이 이러니 처음에는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밥그릇을 뺏으러 온다고 생각했던 농민들의 인식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앞으로 이들은 괴산뿐 아니라 농촌 전반의 문화와 농업과 농부에 대한 가치를 올리기 위해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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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소유하지 않고 점유한다
경복궁의 서쪽 동네, 기름 떡볶이를 먹으러 가던 통인시장 근처의 작은 골목을 우리는 서촌이라 부른다. 지난 2018년 말 문을 연 서촌창작소는 창작자들을 위한 메이킹 공간을 지향한다. 한바탕 크게 붐이 일었다 다시 조용해진 서촌에서, 서촌을 기반으로 하는 창작자를 위한 커뮤니티인 셈이다. 목공, 가죽, 조향, 드로잉 등 공예 수업부터 메이커와 함께하는 특별한 강연까지 다양한 경험을 향유할 수 있다. 메이커는 라이팅 디자이너부터 공간 기획자, 건축가까지 다양하다. 서촌창작소는 대합실, 제작실, 작업실로 공간을 나눴다. 대합실은 경험을 시작하는 곳으로 서촌창작소의 리셉션이자 인포 데스크다. 제작실은 다양한 장비를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장비 교육부터 이용까지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사무실 겸 작업실 공간에 1인 창업가나 스타트업을 준비 중인 사람들을 위한 사무 공간도 제공하고 있다. 작업은 하고 싶은데 집에서는 쉽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활력을 주는 공간이다. 서촌을 사랑한다는 공통점으로 만난 사람들은 서촌에서의 경험을 같은 공간에서 나누면서 더욱 친해진다. 늘 서로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혹은 받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함께’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인맥은 물론 네트워킹도 오직 도움을 받겠다는 목적성을 띠고 경주마처럼 달린다면 소외되기 쉽다. 내 취향, 내 관심사, 내가 하는 일에 맞는 곳에 발을 담그는 것이 좋다. 서촌창작소의 시작에 함께한 건축가 그룹 지랩의 이상묵 대표는 “공급자 위주의 대량생산이 아니라 사용자 관점에서의 공간이 완성되려면 사용자들의 개성을 잘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소유하지 않고, 공유 혹은 점유하면서 그들만의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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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한 사람의 선택이 만들어낸 집단
015년 강동구에서 첫 번째 띵굴시장이 열렸다. 당시 참여 업체는 20곳 남짓. 전체를 구경하기 까지 30분이면 충분할 정도로 작은 규모였다. 그랬던 띵굴시장이 어느덧 5년이 됐고, 지금은 150개가 넘는 업체가 참여하는 하나의 브랜드로 성장했다. ‘띵굴마님’이라는 상징적인 존재는 자본의 힘에 밀려 사라졌지만 ‘띵굴’이라는 브랜드 자체는 건재하다. 특히 신생 브랜드는 띵굴시장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인지도를 올리는 효과가 있다. 비정기적이지만 두 달에 한 번꼴로 셀러들이 전부 모여 띵굴시장을 치르면서 전우애도 생긴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진상 고객을 상대하면서 옆 부스의 셀러들과도 친해지고, 그러면서 유대감이 싹터 자영업의 애환에 대한 대화도 나누게 된다. 같은 경험을 공유한 이들은 특별한 사정이 생기지 않는 한 다음번 띵굴시장에서도 만나게 된다. 인스타그램 계정에 서로의 아이디를 태그하며 신제품 혹은 이벤트 내용을 대신 알리기도 한다. 봄에 모내기를 돕고, 가을에 벼 베기를 돕는 것처럼 서로서로 필요에 의해 품앗이를 한다.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감이 주는 확실한 기브앤테이크가 필요하다. 시작은 띵굴마님의 컬렉션이었지만 지금은 띵굴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하나의 거대집단이 됐다. 브랜드를 알리는 동시에 판매 루트를 뚫기 위해 소상공인에게는 나쁘지 않은 대안이다. 그 안에서 감당해야 할 감정노동의 시급은 별도로 계산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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