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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021.01.14

시간을 기록하는 시선

정재혁은 10여 년간 매거진 기자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통신원으로 활동했다. 그가 기록한 도쿄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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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와 장인, 두 주제의 만남이 신선하다. 꽤 오랜 시간 이글루스에 글을 썼다. 그걸 보고 출판사 꼼지락의 편집자가 말을 걸어주었다. 처음에는 도쿄에 관한 에세이를 제안받았다. 구체적인 콘텐츠 기획을 하던 시기에 일본 구두닦이 마스터 대회에서 사상 최초로 20대 최연소 우승자가 나온 이야기를 올렸다. 글을 보고 편집자가 그 이야기 엮어보면 어떻겠냐고 하더라. 이런 서사를 가진 사람이 책으로 낼 수 있을 만큼 많이 있을까 하는 불안도 있었지만 진행하고 싶은 기획이었다. 우리나라와 다른 장인이라는 의미 또한 흥미롭다고 여겼다.
그 의미가 어떻게 다른가.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연륜이 있고 업계에서 일정한 성과를 이룬 사람을 장인이라 칭하는데 일본은 좀 다르다. 장인이라는 단어를 되게 캐주얼하게 사용한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그 업계에서 일을 해도 ‘수행’이라는 표현을 쓰니까. 세월의 흐름이나 결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을 장인이라고 한다. 처음 이 기획으로 인터뷰를 청할 때 ‘그들이 스스로 장인이 아니라고 하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않더라. 장인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바뀐 것 또한 이야기의 한 축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전통적 장인과 ‘젊은’ 장인에게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 과거 매거진에서 일하며 청바지 장인을 취재하러 간 적이 있었다. 예순이 넘은 분이었는데 나름 격식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해 한국에서 김이랑 선물을 바리바리 사 갔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만난 젊은 장인들은 도시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어떤 가치를 발견하고 그걸 하나의 일로 만들어냈다는 면에서 스타트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사회와 작용하면서 하나의 가치를 만드는 걸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과거의 장인이 어제를 대변하는 사람들이라면 지금의 젊은 장인은 변화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셈이다.
이런 장인을 기록하는 도시가 꼭 도쿄여야만 했던 이유가 있을까. 개인적으로 근래의 도쿄가 꽤 재미있다고 느꼈다. 소비세를 올리고 인감을 폐지하는 등 도시의 바탕이 되는 것들이 많이 변하고 있다. 30년 된 책방이 문을 닫고 100년 된 백화점이 영업을 마쳤다. 1980년대 문화의 중심이었던 쇼핑몰은 리뉴얼 공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 과정이 참 흥미롭다. 어제에서 내일로 변하는 과정에서 오늘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리뉴얼 공사를 위해 쳐놓은 펜스에 그림을 그려놓고, 곧 돌아올 거라는 광고 문구를 내건다. 공사 중인 시간조차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을 보며 변해가는 과정 자체도 살아 있다고 얘기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흘러가는 시간처럼 보이지만 ‘도시가 어제를 기억한다’는 방법이랄까. 이 현상을 목격하며 지금의 도쿄를 기록해야겠다는 어떤 결심 같은 게 있었는데 그게 이 책의 형태가 된 것 같기도 하다. 14명의 장인을 매개로 근래 도쿄의 모습이 보였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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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 <도쿄의 시간 기록자들> 정재혁 지음, 꼼지락 펴냄.
꽤 오랜 시간 일본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관찰하고 있다. 사실 도쿄만 주야장천 간다. 오사카는 두 번밖에 가보지 않았고 다른 지역은 출장 때문에 방문했을 거다. 스무 살이 넘어 일본에 처음 갔는데 거기에 내게 맞는 사이즈의 옷이 있었다. 지금이야 옷이 다양한 사이즈로 나오지만 10년 전에는 한국에서 왜소한 체격인 내게 딱 맞는 옷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해외 쇼핑몰에서 겨우 찾을 수 있었는데 일본에서는 어디에나 내 사이즈가 있더라. 심지어 더 작은 사이즈도 있었다. 그때 여기에는 내 자리가 있다는 생각을 문득 했던 것 같다. 다양성에 대해서도 좀 더 존중받을 수 있는 분위기였다. 혼밥, 혼술 등 아무렇지 않게 혼자서 모든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기질적으로 맞는 것 같았고(웃음). ‘Resize’를 광고하던 무인양품의 캠페인, 어떤 백화점에서 사람 얼굴에 케이크를 던진 이미지를 걸어놓고 “나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나’다”라는 식의 캠페인을 보며 사람을 생각하는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다.
책에 싣지 못해 아쉬웠던 장인이 있었나. 정확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데, 가쓰오부시 장인이 있었다. 일본의 모든 가쓰오부시를 찾아 연구하고 시부야에 아침만 제공하는 식당을 열었다. 젊었을 때 시부야에서 새벽까지 술 마시고 놀던 사람인데 새벽 4~5시까지 놀다 마땅히 아침 먹을 곳이 없는 게 아쉬워서 가게를 열었다고 하더라. TED에서 가쓰오부시를 주제로 강연도 했다. 우리가 필요에 의해 일을 하는 것처럼 장인이라는 게 이렇게 캐주얼할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어제 내 옆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이 오늘의 장인이 될 수 있다는 게 재미있는 지점이라고 여겼다.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며 내린 ‘지속 가능한 일’에 대한 답이 있다면. 성공한 사람을 만나면 종종 일과 일상의 경계에 관한 질문을 던질 때가 있지 않나. 이들에게 그 답은 하나밖에 없다. 일이 일상이고 일상이 일이다. 살아가는 시간 자체가 일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죽지 않는 한 일은 계속된다. 물리적인 지속 가능함을 얘기하자면 그렇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혼자서 일하지만 이들은 절대 혼자가 아니다. 누군가와의 관계, 사회와 작용을 하면서 일이 완성된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박새로이가 “혼자 잘돼봤자 이 마을이 안 살면 안 된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바리스타 사카오 아쓰시의 경우에도 처음 일본 커피 신에 접근할 때 경쟁 업체 가게들과 동맹을 맺고 함께 성장했다. 일을 하며 마주치는 관계를 놓치지 않고 그 과정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항상 존재하는 것 같다.
지속 가능에 대한 불안이 가득한 시대에 장인을 기록한 이 책의 사용법을 알려준다면. 이 책을 만들면서 불확실할 때는 내가 확실히 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해도 된다는 걸 배웠다.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할 수 있는 걸 했더니 브랜드가 만들어졌을 테니까. 시작이 있어야 과정이 있고, 비로소 완성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일본 #장인 #도쿄 #정재혁 #일본장인 #도쿄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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