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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2020.11.28

철학적인 옷

전형적 관습을 전복시키는 옷을 세상에 내놓는 막시제이의 원동력은 끊임없는 고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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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이재형.
런던에서 왔다. LCF(London College of Fashion)에서 패션을 전공했다. 그곳에서 공부하는 동안 패션은 나에게 어떤 언어가 됐다. 언제부턴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이 아니라 옷으로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늘 즉각적이었고 언제나 흥미로웠다. 이후 막연하게 여겼던 나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 조금씩 구체화됐고,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꽤 오랜 시간 동안 브랜드 론칭을 준비했다.

온갖 브랜드가 지천에 널린 시절인데, 브랜드를 시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브랜드가 홍수처럼 차고 넘칠수록 더욱더 나만의 브랜드에는 어떤 선명한 지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고한 철학이 깃든 옷을 만들고 싶었다. 독보적인 감각으로 패션 시장에 혁신적인 대안이 되고 싶었다. 나의 영어 이름과 한글 이름을 합쳐서 브랜드명을 만들었는데, 중간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XX’라는 심벌을 새긴 것도 그 이유다.

그래서인지 시즌마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옷을 만들 때 디자이너마다 집중하는 부분이 다르겠지만 나는 콘셉트를 정하는 일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이야기가 주제가 되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단어나 이미지를 끊임없이 나열하고 고민한다. 시간이 꽤 걸리지만 그 역력한 고민들 틈에서 결국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더라. 그 이야기를 기반으로 디자인적 상상을 더하며 옷을 만든다. 그것이 새로운 계절의 시작이다.

색과 소재, 형태와 구조가 무분별하게 뒤섞여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유연하게 조화를 이룬다. 막시제이를 관통하는 디자인 철학은 ‘아이덴티티(Identity)’다. 모든 사람은 복합적인 자기 정체성을 지닌 채 다중적으로 살아간다. 그런 부분을 해체와 재결합이 반복되는 형태와 다양한 레이어, 대비가 강한 컬러나 소재의 조합으로 옷을 통해 녹여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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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자이너 이재형의 영어 이름과 한글 이름을 섞어 완성한 막시제이. 2 잠원동에 위치한 막시제이의 쇼룸. 3 예상치 못한 색과 소재를 조합하고 해체하는 데 능한 막시제이의 기술력이 돋보인 옷. 4 옷에 풍부한 양감을 더하는 작업.
옷이 전체적으로 양감이 풍부하다. 옷은 사람의 몸에 입혀지는 입체적인 구조물이다. 그렇기에 어느 각도에서 봐도 매력적인 옷이 나올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을 한다. 다채로운 것을 뒤섞고 여러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난해하고 실험적이기도 하다. 개인적 경험이 옷에 녹아들어서 그런 것 같다. 살아가면서 처하는 환경이나 상황, 그 속에서 느꼈던 개인적 감정과 기분을 옷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영감을 받기 위해 현대미술이나 영화 그리고 음악을 통해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부분을 상상하기도 한다. 디자인적인 자극을 줄 수 있는 상황이나 공간을 일부러 찾는 편이고, 그 과정을 전부 메모해 디자인할 때 참고한다.

2018년부터 쉬지 않고 컬렉션을 이어오고 있다. 새로운 시즌에 맞춰 계속해서 옷을 만들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첫 컬렉션이 가장 애착이 간다. ‘Masquerade Collection’을 주제로 한 것으로 대학 졸업 작품이기도 하다. 이 컬렉션 덕분에 수석으로 졸업했고, 막시제이의 초석이 되었다. 현재 브랜드의 중심적인 디자인 철학 또한 이 컬렉션에 담겨 있다.

여성복 라인을 내놓는 남성복 디자이너들이 늘고 있다. 막시제이는 맨즈웨어가 베이스지만 젠더리스하게 사용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맨즈웨어를 기반으로 한 여성복 라인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하다. 나이키나 향수 브랜드와의 협업도 해보고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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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S/S 런던 패션위크에 초대되며 완성한 패션 필름의 일부로, 서울 곳곳에서 각자의 길을 담담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연출했다.
런던 패션위크 진출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런던 패션위크에 서울의 디자이너를 초대하는 교류 프로그램이 있다. 서울 패션위크에 초대된 해외 바이어들은 매 시즌 마음에 든 디자이너에게 투표를 한다. 이번에는 2019 F/W와 2020 S/S의 합산 점수가 우수한 디자이너들이 이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 있었다. 조건이 되어 지원했고, 기분 좋게도 영국패션협회(BFC)는 막시제이를 선정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디지털 패션위크로 진행됐다. 코로나19로 인해 새로운 시즌에 대한 것들을 패션 필름 형태로 만들어 런던으로 보내야 했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욱더 실험적이고 복합적으로 옷을 만들었다. 이번 시즌에는 ‘Escapist’를 주제로 해방에 관한 주제를 옷에 담아내고자 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팬데믹과 같은 예측 불허의 상황에서도 각자의 길을 담담히 걸어나가는 모습이 이번 계절의 영감의 원천이 된 것이다. 이 옷을 입은 채 현재 서울의 거리를 무심하게 걷는 모습을 패션 필름으로 담아냈다. 사실 옷을 이고 지고 런던에 가는 일보다 패션 필름을 만드는 일이 더 쉬울 줄 알았는데 훨씬 복잡하고난해했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언택트라는 시절 속에 살게 만들었고, 디지털 패션위크라는 새로운 과제를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런던 패션위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튜브 본사와 우연히 연락이 닿았다. 그들과 함께 현재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대해 고민했고, 이런 시절에는 어떤 방식으로 가야 하는가에 대해 한참을 논의했다. 어떤 디지털 콘텐츠를 만드는가 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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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비전형적인 대비가 돋보이는 막시제이의 옷. 2 ‘Masquerade’를 주제로 한 컬렉션.
디지털 패션 이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나. 지속 가능한 패션의 중요성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막시제이는 현재 주문 제작 방식(Made-To-Order)을 고수하며 대량생산을 지양한다. 친환경적으로 제작된 특수한 소재나 공법을 적용해 적극적으로 지속 가능한 패션에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그 과정을 통해 혁신적 대안을 내놓고싶다.

이제 내년 가을과 겨울 시즌을 준비할 때다. 또다시 새로운 시즌의 시작이다. 디자인 프로세스가 다양할수록 좋은 컬렉션이 나온다고 믿는다. 현재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초기 단계에 있다. 어떤 옷이 나올지 나조차 아직 모르겠다.
#디자이너 #인터뷰 #막시제이 #지속가능한패션 #이재형 # 아이덴티티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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