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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021.05.04

길 잃은 인사 평가

목적 없는 평가는 무용하다. 길 잃은 다면평가제의 나아갈 방향을 짚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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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매 학기 말이면 성적표와 함께 생활기록부를 받아봤다. 이때만 되면 가슴이 콩닥거렸던 기억이 난다. 성적 때문은 아니고, 생활기록부 맨 아래에 있는 종합평가 때문이었다. 선생님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확인하는 일은 늘 조금 설레고 긴장됐다. 물론 이 때문에 유급될 리는 없었지만, 혹시라도 나쁜 이야기가 있을까 걱정했던 것 같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평가’라는 이름이 붙으면 움츠러들고 긴장하는 게 사람 심리다. 그런데 커리어, 직장 내 인간관계, 나아가 생계와도 연결되는 평가라면? 당연히 신경이 곤두서고 예민해진다. 만약 함께 일하는 동료 누군가가 ‘당신과 일하고 싶지 않다’고 평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지난 2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카카오 인사 평가 시스템을 고발하는 글이 업로드됐다. ‘유서’라는 제목의 글에는 ‘사내 인사 평가로 인해 왕따를 경험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며칠 뒤 비슷한 내용의 폭로가 추가로 업로드되며 논란은 커졌다. 이들은 평가 내용이 조직장의 사심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며 부정적 응답 결과가 적절한 피드백 없이 단순 통보돼 직원의 자존감을 바닥으로 짓누른다고 덧붙였다. 카카오가 채택하고 있는 인사 평가 방법은 ‘다면평가제’다. 상사에 의한 일방적 평가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설계됐다. 상급자, 하급자, 동료를 포함한 복수의 인원으로부터 피평가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피드백하는 과정을 거친다. 2018년 <포브스>의 보도에 따르면 <포춘>이 선정한 1000대 기업의 85%가 이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직급과 상관없는 다수의 인원이 참여해 평가하고, 익명으로 결과를 공개한다.’ 설명만 들으면 이만큼 합리적이고 평등한 제도가 또 어디 있겠나 싶지만 실효성에 대한 논의는 끊이지 않는다. 제도 도입 역사가 긴 해외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설계와 시행, 관리가 까다롭다는 말이다. 전문가들은 다면평가제의 핵심은 평가 결과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있다고 말한다. 이 제도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사고과를 위한 자료 수집이 아니라 직원의 강점은 강화하고 약점은 보완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업적 평가보다는 행동 평가에 가깝다는 말이다. 부정적인 결과를 받은 구성원이라 하더라도 회사는 함께 개선점을 고민하고, 구체적인 성장 목표를 세우도록 도와야 한다. 하지만 구성원 개개인의 자아실현, 성장보다 회사의 실적과 목표가 중요시되는 조직 문화에선 이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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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다면평가제의 성공적인 도입을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이 뒷받침되어야 할까? 국내에서 이 제도를 가장 먼저 선택한 LG그룹은 LG경제연구원을 통해 ‘다면 평가의 성공적인 도입 방안’에 대한 연구 자료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다면평가제의 성공 조건은 다음과 같다. 익명성은 철저히 보장할 것. 카카오의 경우처럼 상급자를 향한 평가 내용이 노출되면 조직 내 불이익이 발생할 염려가 있다. 편향되거나 결과를 왜곡할 만한 응답은 제거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사적인 감정, 담합으로 결과를 오염시킬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또 피드백에는 구체적인 솔루션이 동반돼야 한다. 그래야 직원이 다음 목표를 설정하고, 회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다. 제도 도입의 효과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일도 중요한 과정이다. 특히 평가 데이터를 관리하는 리더에 대한 교육이 주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다면평가제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경우를 보면 이 조건이 올바르게 이행되지 않고 있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가운데 피드백을 가장 강조한다. 2013년 CEO로 취임한 사티아 나델라는 다면평가제를 도입하면서 조직 리더와 팀원이 1년에 최소 3~4번은 만나는 커넥트 시스템을 시행했다. 이 시간에는 업무 우선순위와 수행 여부, 목표 재조정, 성장 여부를 논의하도록 했다. 원활한 소통은 곧 업무 성과 향상으로 이어졌다. 반면 일반적인 공식에서 벗어나더라도 성공적으로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다면평가제를 완전 실명으로 도입한 넷플릭스다. 아예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하는 ‘라이브 360도 평가’도 실시한다. 8~10명 정도의 인원이 한자리에서 서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살벌해 보이지만 과정마다 엄격한 매뉴얼을 제시하고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실질적인 솔루션이 되도록 한다. 피드백 결과를 인사고과나 승진에 연계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데, 이 덕분에 조직 내에 다면평가제가 거부감 없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런 사례를 보면 다면평가제가 열린 조직 문화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시스템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제아무리 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지속 가능한 방법을 고민하지 않으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고 만다. 마이크로소프트도 넷플릭스도 지금의 성과를 얻기 위해 나름의 진통과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카카오의 인사 평가 논란은 무거운 질문을 남긴다. 다면평가제가 조직 구성원에게 성장 동력을 마련해주는 데 도움이 되고 있는지, 또 길을 잃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넷플릭스 #커리어 #카카오 #인사평가 #360도평가 #다면평가제 #마이크로소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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