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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021.05.05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전쟁

제2의 <킹덤>을 꿈꾸며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막대한 자본을 쏟아붓는 업계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엄청난 숫자의 콘텐츠가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 난립과 르네상스의 기로에 선 오리지널 콘텐츠 시장을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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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자마 바지에 러닝셔츠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이리저리 리모컨을 눌러보던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볼 게 없다’. 무료한 아버지를 그린 드라마의 흔한 클리셰지만 볼거리가 넘쳐나는 요즘 같은 세상엔 한 박자 공감이 덜 가는 장면이기도 하다. 오히려 빼곡히 들어찬 썸네일 앞에서 무엇부터 봐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세상, 까딱하다간 유튜브의 무한 알고리즘에 빠져 훌쩍 시간을 빼앗기는 세상이 왔다. 신문에 인쇄된 프로그램 편성표를 정독해가며 TV 앞에서 오매불망 목을 빼고 앉아 있던 시절이 있었건만, 지금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보고 싶은 콘텐츠를 언제 어디서든 몇 번이고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렇게 콘텐츠 시청에 관한 한 편리함과 다양함이 상향 평준화된 요즘, 떠오르는 빅 이슈가 있다면 바로 각축전을 예고한 오리지널 콘텐츠 시장에 관한 것이 아닐까.

오리지널 콘텐츠가 와르르
‘오리지널 콘텐츠’란 단어가 대중에게 친숙하게 와닿은 시점이 언제였는지를 생각해보면 2019년 대대적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표방하고 나선 드라마 <킹덤>이 먼저 떠오른다. (물론 그보다 앞선 2017년, 넷플릭스에서 578억원에 달하는 제작비 전액을 투자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가 있었다.) 한국형 좀비의 가능성을 깨닫게 해줬을 뿐 아니라 ‘믿고 보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공식을 알린 계기가 됐는데 이후로도 <스위트홈> <보건교사 안은영> <인간수업> <좋아하면 울리는> 등 마니아를 양산해낸 오리지널 콘텐츠가 줄줄이 쏟아졌다. 2016년부터 약 4년간 들인 투자금만도 7700여 억원. 덕분에 80편가량의 한국발 오리지널 콘텐츠가 빛을 볼 수 있었다. 다른 플랫폼 사업자들이 넷플릭스의 호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리 없었다. <며느라기> <도시남녀의 사랑법> 등의 드라마와 더불어 <찐경규> <덕후투어> <개미는 오늘도 뚠뚠> 등의 예능을 쉴 새 없이 선보인 카카오 TV는 2023년까지 약 3000억원을 투자해 240여 개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이겠다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놨다. 첫 오리지널 콘텐츠 <여고추리반>을 시작으로 <당신의 운명을 쓰고 있습니다> <마녀식당으로 오세요> 등을 선보이게 될 티빙 역시 올 한 해에 20여편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내놓겠다는 계획을 공고히 했다. 여기에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 등 해외 OTT 업체들이 국내 서비스 오픈을 앞두고 있는 만큼 그야말로 콘텐츠 홍수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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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리지널 콘텐츠인가?
이쯤에서 의문이 든다. 모든 플랫폼에서 왜 그렇게 오리지널 콘텐츠에 사활을 걸고 있는 걸까? 돈이 되기 때문이라는 1차원적인 이유가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플랫폼이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은 필수 중의 필수다. 물론 플랫폼 자체만으로도 큰 힘을 발휘하던 시절이 있었다. 새로운 플랫폼의 출현만으로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고 유저가 물밀듯 유입되던 때였다. 그러나 아무리 잘 만든 판이라도 그 안에 제대로 된 즐길 거리가 없으면 사람들은 흥미를 잃고 발길을 끊게 마련이다.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오직 여기서만 보고 듣고 즐길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콘텐츠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바로 오리지널 콘텐츠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독점력 있는 콘텐츠의 힘은 통계로도 증명된다. 2018년 기준, 넷플릭스 내 오리지널 콘텐츠는 전체 비중의 8%에 불과했지만 시청 시간으로는 전체의 37%를 차지할 만큼 영향력이 컸다. 독점 콘텐츠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통계는 또 있다. KT가 대상자 2000명에게 유료 동영상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유 (2020 인터넷 이용자 조사)를 물었더니 콘텐츠의 다양성 때문이라는 답이 1위(49%)를 차지했고 뒤이어 서비스별 독점 콘텐츠를 제공하기 때문(43.6%)이라는 응답이 이어졌다. 세계 시장에서 승부수를 띄워볼 수 있다는 점도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탄력이 붙는 이유다. 국내 시청자들에게만 반짝 인기를 얻고 끝났던 과거와 달리 전 세계 시청자가 연결된 넷플릭스 시대에서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못지않게 K-드라마가 뜰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킹덤>에 감명받은 외국인들 덕분에 아마존에서 갓이 팔리고 <사랑의 불시착>이 인기를 끌면서 드라마 속 의상과 소품을 모아 도쿄에서 전시회를 여는 등 소위 대박 콘텐츠의 파급 효과는 국경을 넘나든 지 오래다. 한편 방송과 통신의 구분이 모호해졌다는 점에서 오리지널 콘텐츠 확대의 이유를 찾기도 한다. 드라마는 거실 TV, 영화는 극장이라는 ‘국룰’이 스마트폰 시대를 맞이하며 완전히 깨져버렸기 때문에 이동통신사나 다음, 네이버 같은 대형 포털이 방송국에서나 만들었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SK텔레콤과 KT는 각각 1조원, 4000억원을 투자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승부수를 던지는 등 치열한 전쟁을 예고한 바 있다.

난립일까 르네상스일까?
오리지널 콘텐츠 춘추전국시대를 목전에 둔 지금, 동전의 양면처럼 기대와 우려가 반반씩 흘러나오고 있다. 먼저 콘텐츠 산업이 엄청난 성장을 거듭할 거란 장밋빛 전망이다. 웹툰 원작의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와 영화 <승리호>를 영상 콘텐츠로 성공시킨 카카오엔터테인먼트 M컴퍼니는 만화, 드라마, 영화 등 모든 콘텐츠를 한곳에서 유기적으로 성장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웹툰 작가, 영화 스태프 등 관련된 많은 인력이 좀 더 나은 여건에서 일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감독, 작가, 촬영진 등 4만3000명 이상의 국내 인력과 함께 서울, 부산, 제주 등 전국 58개 도시를 돌며 오리지널 콘텐츠를 뽑아낸 넷플릭스의 사례만 놓고 봐도 콘텐츠 제작 산업에 큰 활력이 돌고 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 보자면 반응은 크게 2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뷔페의 음식을 바라보듯 풍성한 볼거리에 벌써부터 행복해지는 사람들이 있을 터. 부디 매일 밤 정주행의 늪에 빠져 좀비처럼 출근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반면 혹하는 썸네일로 무장할 것이 뻔한 콘텐츠 부대에 만감이 교차하는 이들도 있다. 일단 봐야 할 것이 너무 많아진다는 게 문제다. 어떤 드라마를 보고 안 보고는 철저히 개인의 선택이지만 주변으로부터 ‘그거 봤냐?’는 질문이 몇 번이고 반복되면 일부러라도 찾아봐야 하는 것은 아닌지 괜한 스트레스와 압박을 느낄 수 있다. 인터넷 세상에 엄청난 정보가 축적되면서 마치 모래 밭의 바늘처럼 양질의 정보를 찾아내기가 점점 더 요원해졌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내 취향에 맞는 혹은 웰메이드 콘텐츠를 찾기 위해 만만치 않은 번거로움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결론도 나온다. 호기심에 1회씩만 보다 미처 매듭짓지 못한 숱한 드라마들이 스치는 순간이다. 실제로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계속해서 경쟁력 있는 콘텐츠들이 나올 수 있을지 고민이 깊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면 이제 수신료의 가치를 생각하듯 월정액의 가치를 떠올리며 계산기를 두들겨보는 게 수순이다. SK텔레콤, KT, CJ엔터테인먼트 등의 기업에서 IPTV 사업 및 OTT 전략 업무를 수행했던 노가영씨는 공동 저서 <콘텐츠가 전부다>를 통해 “넷플릭스는 단 한 번도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으나, 조기 종영의 수모를 당한 TV 시리즈는 전체의 40%를 훌쩍 넘어서는데 이들 작품은 가입자들이 전혀 인지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넷플릭스의 추천 시스템에서조차 외면받는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우스 오브 카드>나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같은 웰메이드 작품도 많지만, 허수가 모여 있는 것도 확실한 상황에서 계속해서 월정액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 이쯤에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속담이 떠오른다면 지나친 기우일까. 대단한 향으로 기대감을 한껏 끓어올려놓고,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먹을 게 없더라는 김빠지는 소리는 하고 싶지 않다. 소문난 잔치답게 진귀한 산해진미로 입맛을 돋우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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