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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 팬츠, 슈즈 모두 버버리, 네크리스 포트레이트 리포트.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온 미세한 바람소리에 잠 못 이룰 만큼 신경이 곤두선 밤이면 눈을 감고 관자놀이에서 팔딱거리는 맥박을 셈한다. 모로 누운 채 뜨겁고 축축한 리듬을 따라 몇 번의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다 보면 허공을 어지럽게 맴돌던 소리들은 어느새 점성토처럼 바닥에 찰박이며 내려앉는다. 드라마 <낮에 뜨는 달> 촬영이 한창이던 8월의 끝자락, 하루의 대부분을 도하와 한준오로 살고 있는 김영대와 함께 밤 골목을 거닐었다. 오후에 내린 소나기가 스민 아스팔트는 짓이겨진 목탄처럼 새카맸고,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김영대는 자신에게 덧씌워진 포장을 블랙홀 같은 길 위에 하나씩 덜어냈다. 나란히 걷던 그와 마주 앉은 것은 자정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규칙적인 속도로 움직이던 시침과 분침은 이윽고 같은 숫자 위에 몸을 포갰고, 아득한 밤의 한가운데서 도하도 한준오도 아닌 김영대의 말간 얼굴이 드러났다. 베개 위 꿈틀대는 박자를 세던 지난밤처럼, 그의 본모습을 겹겹이 두르고 있던 모든 것은 침잠했고 오직 김영대만이 명징하게 남았다.

톱 마틴로즈 by 아데쿠베, 팬츠 구찌, 슈즈 드리스 반 노튼, 비니 카비시, 이어 커프 포트레이트 리포트.

곧 자정이다. 이런 깊은 밤을 좋아하나? 
원래 낮을 좋아했다. 공부나 운동 등 생산적인 일은 낮에 하기 마련이니까. 일찍 일어나야 하루가 상쾌했고 늘어지게 늦잠을 잔 날은 오늘 하루 날렸다는 생각에 찝찝해하곤 했다. 그러나 요즘엔 생각이 좀 바뀌었다. 지금 <낮에 뜨는 달> 촬영이 한창인데, 뜨거운 태양 아래 진행되는 야외 촬영 신이 많아 지치더라.(웃음) 확실히 밤이 되면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다. 또 화려한 조명으로 물든 야경은 밤에만 볼수 있고. 요즘 들어 밤의 매력을 많이 느끼고 있다.

집돌이로 알고 있는데, 밤에 집에서 주로 뭘 하는지 궁금하다. 
대본을 숙지하거나 좋아하는 영화를 보며 나에게 몰두하는 시간을 보낸다. 아무래도 낮보단 고요한 밤이 집중하기 좋으니까. 또 진짜 맛있게 즐기고 싶은 음식도 밤에 먹는다. 낮에는 바쁘니까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해 간단히 먹을 때가 많다. 좋아하는 음식을 눈치 안 보고 마음껏 행복하게 먹었던 건 대부분 밤이었다.

무엇을 그렇게 맛있게 먹었나?(웃음)
보쌈, 등갈비, 오리구이 등. 요즘엔 든든하고 보양도 되는 한식이 좋다. 가끔 매운 게 당길 땐 불족발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예전엔 매운 음식도 싫어하고 치킨, 피자 같은 패스트푸드를 좋아했는데 신기하게 취향이 바뀌었다.

밤의 매력을 새로이 알게 되었고, 입맛도 달라졌다. 여러 변화를 겪는 시기인가 보다. 
그러게. 앞서 말한 것뿐만아니라 연기를 대하는 마음도 바뀌었다. 연기를 시작한 게 아직도 엊그제 같은데 벌써 7년 차가 되었다. 물론 대선배님께서 보시기엔 가야 할 길이 한참 멀지만, 아주 짧은 시간도 아니다. 생각해보면 가장 긴 학창 시절인 초등학교도 6년을 다니지 않나. 데뷔 초엔 현장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체험 학습을 하는 기분이랄까. 그러다 3~4년 차쯤 되니 조급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연기를 업으로 삼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마냥 재미로만 할 수는 없고, 그에 응당한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물론 남들과 차별점을 찾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압박감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니 뭐랄까… 잘해야 한다는 마음은 당연하고 주변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전에 내게 연기는 ‘나 만 잘하면 되는 것’이었다. 못하면 내 탓, 잘해도 내 덕. 그러나 결코 혼자서 완성할 수 없는 분야란 걸 최근 많이 느낀다. 이런 마음이 든 이후로는 현장에서 나와 합을 맞추는 모든 스태프들이 궁금해졌다. 요즘엔 작품을 함께하는 스태프 모두의 이름을 기억하려 하고, 한 번이라도 더 다정하게 부르며 연대감을 느끼려 한다.

셔츠 페라가모, 이너 팬츠 프로젝트 G/R, 팬츠 우영미, 슈즈 돌체앤가바나, 볼캡 비바스튜디오, 네크리스 크롬하츠. 의자 프리츠한센.

시작부터 탄탄대로를 걸어온 듯 보이는 김영대에게 조급한 마음이라니 의외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나에게 바라는 것들이 많아지고 기준치도 높아지기 마련이니까. 그에 미치지 못했을 땐 큰 상실감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결코 완벽해질 수 없다’는 걸 스스로에게 계속 인지시키고 있다. 요즘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에 사로잡혀 내내 괴로워하기보단 쿨하게 인정하고 무엇을 고쳐야 할지 고민하는 데 시간을 쏟는다. 물론 이제 막 시작 단계라 가야 할 길이 멀다.(웃음)

밤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시간이다. 깊은 밤, 스스로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을까? 
주로 다짐을 한다. 요즘 거의 매일같이 촬영이 이어지고 있는데 아쉬운 점은 늘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있을 때는 좌절할 시간도 사치다. 실망하든 기뻐하든 모든 것은 결과가 나온 이후에 해도 충분하다. 지금의 내가 해야 할 일은 내일은 더 잘하자고 매일 다짐하며 계속 달려나가는 것뿐이다.

4년 전 <싱글즈>를 만났다. 그때만 해도 막 신인 티를 벗고 연기를 진지하게 바라보기 시작한 무렵이었는데, 그사이 연기를 향한 마음이 절박해진 듯하다. 
조금씩 커지던 열망이 지금 촬영하고 있는 <낮에 뜨는 달>을 만나며 간절해졌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캐릭터를 대하는 마음이 깊어졌다. 그동안 참여한 작품들 모두 소중하고 좋은 배역이었지만, 이번 작품의 캐릭터를 대하는 마음은 이전과는 조금 다르다. 처음으로 ‘내가 이 인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구나’를 느꼈다. 이 캐릭터가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적어도 나만큼은 온 마음을 다해 아끼고, 최선을 다해 표현하고 싶다.

코트, 셔츠, 슈즈 모두 발렌티노, 팬츠 꾸레쥬.

김영대가 그토록 사랑하는 이번 배역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낮에 뜨는 달>에서는 한준오와 도하, 무려 두 명을 맡았다. 
<낮에 뜨는 달>은 차량 추락 사고를 겪은 톱 스타 한준오에게 구천을 떠돌던 도하의 영혼이 빙의되며 벌어지는 스토리를 담았다. 자신의 한을 풀기 위해 한 여자에게 접근하며 도하가 겪는 여러 사건을 중심으로 극이 전개된다. 내가 맡은 한준오와 도하는 완전히 다른 성향을 지녔다. 예를 들어 준오가 완전히 E라면 도하는 극 I다. 또 준오는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반면 도하는 이성적이고 계획적인 인물이다. 실제의 나와 더 가까운 쪽은 준오인데, 일부러 준오의 철없는 모습을 극대화해 표현했다. 반면 여러 사연을 지닌 도하는 많은 연구가 필요했다. 

어떻게 연구했나? 
사랑하는 여자에게 죽임을 당하고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도하는 감히 짐작하기도 힘든 감정과 서사를 지닌 인물이다. 배역을 맡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이었다. 외로웠던 도하와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싶어 자주 만나던 친구들과의 자리도 멀리하고, 좀 불효자 같긴 한데 가족과의 왕래도 줄이며 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보려 했다. 무예에 능한 도하의 모습도 잘 표현하고 싶어 액션스쿨도 열심히 다녔다. 얼마 전 전쟁 신을 찍었는데 자부심이 들 정도로 만족스럽게 나왔다. 감독님도 마음에 들어 하셨다.

배역을 통해 삶의 태도를 많이 배운다고 말한 적 있다. 한준오와 도하는 어떠한 것을 가르쳐줬나? 
사실 준오는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보살펴주고 싶은 친동생처럼 느껴진다. 반면 도하에게서는 많은 걸 배웠다. 차분하고 냉철한 면모나 듬직한 모습 등. 그리고 앞서 말했듯 캐릭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까지 모두 도하에게 배웠다.

‘나라도 꼭 사랑해주고 싶다’는 도하에게 느낀 감정인가 보다. 
맞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지쳐도 도하를 표현함에 있어 조금이라도 아쉬운 점이 있으면 끝없이 고민하고 보완하게 된다. 나만큼은 끝까지 손을 꼭 붙잡아주고 싶다.

어쩐지 도하는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을 것 같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간절한 마음은 어떻게든 닿더라. 마치 진실된 말엔 힘이 있는 것처럼. 
하하. 그렇다면 좋겠다. 나도 어린 시절부터 말의 힘을 믿어왔다. 일례로 고등학생 시절 당시 모의고사 점수로는 터무니 없는 대학을 목표로 잡아놓고 공부했다. 주변에서 턱도 없다고 했지만 전혀 굴하지 않았고 결국 원하던 대학에 입학했다. 어찌 보면 근거 없는 자신감인데, 나는 목표한 바가 있으면 무조건 이룰 수 있다고 믿고 말하고 행동한다. 이런 성향은 부모님의 가르침과 학창 시절 습관에서 비롯된 것 같다.

베스트, 팬츠 모두 베르사체, 브레이슬릿 모두 구찌, 벨트 디젤.

어떤 가르침과 습관인가? 
유학 시절 아버지께서 매주 편지를 보내주셨다. 크게 생각하고 많은 경험을 하라는 등 교과서적인 내용이 많은데, 편지에서 오린 구절과 목표 대학의 로고, 목표 점수를 자습실 내 자리에 붙여놓고 매일 들여다봤다. 지금도 똑같다. 러닝머신 앞에 현재 임하는 작품의 인물 관계도부터 언젠가 받고 싶은 상의 이름, 그리고 그때의 편지 구절까지 붙여놨다. 거의 10년 전 편지라 닳지 않게 코팅까지 했다.(웃음) 나는 이런 방식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목표와 나라는 사람의 가능성을 스스로에게 계속 상기시킨다.

비록 1시간 남짓 대화를 나눴지만 굉장히 담대한 사람 같다. 김영대란 한 사람이 최종적으로 이루고 싶은 먼 훗날의 목표가 궁금해졌다. 
앞으로의 삶에 대해 고민하던 고등학생 시절 세운 확실한 목표가 있다. 그러나 아직은 좀 더 신중하게 다가가고 싶기에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친한 친구 몇 명과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어디 가서 이야기한 적 없다. 지금은 그때 그려둔 길을 나서기 전 치열하게 스스로를 단련해야 할 시간이다. 내가 힘든 건 무엇이든 참을 수 있으니 많이 부딪히고 깨지고 배우려 한다. 이 시간들로 나를 좀 더 채우고, 꿈에 보다 가까워졌을 때가 되면 주변에 조금씩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니 더 궁금하다.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정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언젠가 이 사랑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현재는 이 마음과 맞닿은 비전이라는 것 정도까지만 말할 수 있다.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때론 손에 쥐고 있는 걸 놓아야 할 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선택이 후회를 남기지 않을까? 
모든 방향에는 나름의 가능성이 있고,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제각각 지녔다. 100% 만족하는 선택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도 없다. 그러니 마음이 가는 걸 고르고 후회하지 않게 행동하면 된다. 

김영대에게 연기는 무엇인가?
 나를 성장하게 만드는 촉진제, 스스로를 증명하는 수단. 그리고 내가 꿈꾸는 먼 미래의 목표에 도달해가는 과정.